자율주행 자동차를 기다리며

엄마라고 생각해

by 하얀 나비
어제 보았던 산책길 하늘

“엄마가 운전한다 생각해 봐.”

도로 위에서 투덜거리는 아들에게 내가 건넨 말이다. 아들은 앞차의 흐름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왜 저기서 자꾸 브레이크를 밟는 거야?”


나는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라고 생각해 봐. 내가 해보니까 내리막길에선 나도 모르게 자꾸 발이 브레이크로 가더라고.”


남편도 운전대를 잡으면 화를 내기 일쑤였다.


“여기서 이렇게 천천히 가면 뒷사람들은 어쩌라는 거야!”


그럴 때마다 나는 또 한마디를 보탠다.


“나라고 생각해 봐. 분명 초보 거나 어르신일 거야. 내 엄마고, 내 아들이고, 내 가족이라 생각하면 화가 좀 덜 나지 않겠어?”


얼마 후 다시 탄 아들의 차 안은 몰라보게 여유로워져 있었다.


“엄마, 이제 난 아무 상관 안 해요. 빨리 가봤자 다음 신호등에서 다 만나더라고요.”


그 모습이 기특해 나는 “잘했다, 잘했어” 하며 등을 토닥였다. 누군가 운전이 서툴거든 그저 '우리 엄마'라고 생각하면 화날 일이 없다.


사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내게 운전은 남의 일이었다. 결혼 후 면허는 땄지만 도로는 늘 무서운 정글 같았다. 낯선 이에게 배우는 것도,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도 겁이 났다. 다행히 남편이 든든한 기사가 되어주니 굳이 내가 운전대를 잡을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내 면허증은 장롱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캐나다로 이민 오기 전, 시아버님의 운전기사 아저씨가 당시 최고의 차였던 '그랜저'로 연수를 시켜주신 적이 있다. 88 고속도로를 달리던 그날 그때는 그렇게 차가 많지는 않은 시간이었다.


내가 차를 끄는 게 아니라 차가 나를 끌고 가는 기분이었다. 속도를 내지 못해 뒤로 차들이 밀릴 때마다, 기사 아저씨는 창밖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연신 수신호를 보내셨다. "먼저 가세요, 미안합니다."


평소 나를 예쁘게 봐주셨던 아저씨에게 그날은 아마 생애 '최고의 극한 직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가 참 행복했다. 옆자리엔 남편이, 뒷자리엔 손짓하는 아저씨가, 그리고 길 위의 차들은 나를 피해 가고 나는 그저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옆을 지나치는 운전사들은 운전대를 꼭 끌어안고 잔뜩 긴장한 나를 보며 화를 내는 대신 환하게 웃어주었다. 좋은 차를 타고 두명의 남자와 운전연습을 하는 도로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캐나다의 현실은 달랐다. 한국 면허가 인정되지 않아 다시 테스트를 치러야 했다. 옆자리에 앉은 시험관은 무서운 표정으로 사사건건 점수를 매겼다.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끝나갈 무렵,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거대한 컨테이너 트럭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 좁은 길, 차 두 대가 지나갈 틈조차 없었다.


나는 멈추지 않고 야금야금 앞으로 나갔다.

뒤로 물러나면 큰길인 데다 시험 중이니, 저 큰 트럭이 양보해 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까마득히 높은 운전석의 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두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무언의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뒤로 못 가요. 보다시피 시험 중이니 한 번만 봐줘요!'


팽팽한 신경전이 흐르고 앞이 캄캄해질 무렵, 트럭 운전사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결국 보다 못한 시험관이 내 눈에 보이지도 않았던 뒷쪽 길가 빈자리에 후진 주차를 하라고 지시했고, 트레일러는 내가 비켜준 길을 투덜대며 빠져나갔다.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내 다리는 이미 후들거리고 있었다. '아, 떨어졌구나' 싶었다.


시험관은 아까 왜 트럭 앞에서 멈추지 않고 다가갔느냐며 따끔하게 지적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전 점수가 좋아서 간당간당하게 합격입니다! 축하합니다”


믿기지 않는 결과에 남편에겐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빨리 집에 가서 눕고만 싶었다. 그 '간당간당한 합격'은 이후 결국 접촉 사고를 불렀고, 나는 그날로 운전대를 놓았다.


나는 오늘도 도로 위에서 '엄마 같은' 초보들을 응원하며, 나를 대신해 줄 완벽한 자율주행 자동차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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