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그래도 그들이 보고 싶다

엄마 사랑해

by 하얀 나비
집에 핀 수국입니다


나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그 쥐꼬리만 한 돈을 받는 직장을 다니느라 바빠서 명절 때나 내려가서 가족을 만났다.


고향에 가면 귀가 아플 정도의 고요함과 세상이 멈춘 것 같은 평화로움이 나에게 깊은 휴식을 안겨줬다.



겨우 며칠 손님처럼 머물며 어릴 적 뛰어놀던 고향이 변함없이 그대로 있음에 안식을 찾고 새엄마 밥으로 허기진 마음을 달래다 왔다.



언제나 그대로 거기에 계실 것만 같았던 사람들 그래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도 될 줄 알았다.



새엄마와 나의 관계도 내가 자라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좋아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들은 점점 빛바랜 사진처럼 모습이 변해가고 계셨다.



주먹만 한 눈이 펑펑 내리던 날 할머니를 눈물짓게 하며 코트깃을 올리고 사라지셨던 젊은 아버지가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어깨가 앙상해져 있었다.



다음 명절에 내려갔을 때 새엄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미가 간이 안 좋은 것 같다”


그러나 병원도 갔었고 치료 중이니 괜찮을 거라고 하셨다.



나는 어찌하면 좋을까를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가진돈을 모두 써서 어떻게든 고쳐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새엄마와 아버지는 의사도 보고 있고 약도 먹고 있으니 걱정 말고 서울로 올라가라고 등을 떠미셨다.


떨어지지 않는 발을 떼었다.



그 후로 생모는 더욱더 병이 깊어지시고 결국은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마침 군대를 제대하고 돌아온 큰아들과 막내아들이 고통 속의 마지막 시간을 엄마 옆에서 함께 지켜드렸다.



옷장 속엔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이 곱게 접혀 있었다.



너무나 불쌍한 우리 엄마


고통의 바다인 세상만 보고 가셨다.



만약 다른 세상이 있다면 다시 만나 품에 안고 나를 낳아줘서 고맙고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낯선 “엄마”라는 말과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서 어쩌면 뜻도 모르실 “사랑한다”는 말을 백번이고 천 번이고 해드리고 싶다.



장례식에는 엄마의 친정식구들도 오셨다.


처음 만나보는 작은 이모는 엄마가 젊어서는 얼마나 예쁘고 총명했는지를 울면서 이야기했다.



큰엄마의 친정식구들이 우리 친척이었고 엄마의 친정식구들은 만난 일이 거의 없었다.



나는 묻고 싶었다 그때 왜 생모를 지켜주지 못했냐고?


그러나 내가 더 큰 죄인이라서 그러지 못했다.



우리 세명의 엄마의 자식들은 모두 슬펐다.


누가 누구에게 사랑을 더 받았건 덜 받았건 우리는 한어미의 자식들이었다.


나 혼자였다면 그 슬픔을 어떻게 견뎠을까?



단 한 번도 자식들이 엄마라고 부르지 못했던 엄마.


엄마라고 불려지지 않는 것조차도 몰라서 마음 아파하시지 않아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셋은 그날 어미의 어린아이가 되어 울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창밖으로 세상이 아무 일 없는 듯이 보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세상에서 엄마만 바람처럼 사라졌다.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아버지는 낙천적이고 술을 좋아하셨고


노래도 잘 부르셨다.


기억나는 건 어릴 적부터 떨어진 돈도 절대 줍지 말라고 우리에게 늘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새엄마를 많이 의지하셨고 사랑하셨다.



어느 밤 두 분이 밤에 손전등을 가지고 뒷산에 올라 꿩을 잡으셨다.


손전등을 꿩의 눈에 비추면 날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고기는 애들은 먹으면 큰일 난다고 엄마가 아버지만 드시게 했다.



기억 속에는 새엄마가 아버지를 챙겨드리는 장면이 많았다.


인삼에 대추를 넣어서 끓여드렸고


마늘과 꿀을 끓여서 드렸다.



새엄마가 아버지를 잘 보살펴 드렸지만 술만큼은 막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나와 단둘이 있을 때면 아버지의 입장이 힘들다고 속내를 꺼내셨다.


결혼식 때도 나의 이야기만 꺼내면 엄마가 펄펄 뛰면서 화를 내셔서


말도 못 꺼내고 도와주지도 못하셨다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했다.



우리가 캐나다로 이민날짜를 받아놓고 기다리는 중에 아버지가 교통사고가 나서 크게 다치셨다.



회복이 되는 듯하였으나


중환자실에서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우리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렀다.


아버지는 언제나 웃는 모습이셨다.


정이 많으셨던 아버지


고단한 삶을 사셨다



누군가 나에게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있냐고 묻는다면 단 한순간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들이 몹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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