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맥도널드 햄버거 TV광고를 하다

고수익은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다

by 하얀 나비


우리집 뒷마당에 놀러온 곰


낯선 땅 캐나다에서 적응하기는 아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힘들었다.


영어도 못하고 같은 반에 동양인도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애들은 우리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적응해 갔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까지만 다녔던 아들은

선생님께 손바닥을 많이 맞았다고 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초등학교 행사에 참여했는데

머리가 하얀 교장 선생님이 물이 반쯤 찬 투명한

통 속에 들어가 플라스틱 선반에 앉아 계셨다.



아이들이 던진 볼이 과녁에 맞을 때마다

교장 선생님이 앉아계신 플라스틱 판이 벌어지며

물속으로 들어가셨다.



교장 선생님이 물속에 빠질 때마다 아이들이

환호하며 좋아했고 교장 선생님도 즐거워 보이셨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장면이기에 감동으로 몸에 전율이 느껴졌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래 아이들을 위해서 잘 왔구나.”


그 순간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딸아이가 볼을 던졌는데

볼의 무게를 감지하지 못해서 과녁을 훨씬 벗어나

하늘로 볼을 던져서 그만 웃고 말았다.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그랬다.



딸은 어려서부터 유머 감각이 별로 없었다

다정하지만 농담에는 잘 반응하지 않는 진지한 아이였다



어느 해 딸 생일에 아들이 장난을 치느라


Step sister ” (배다른 여자형제) 에게 주는

생일 카드를 사서 딸에게 건넸다


우리는 깔깔대며 웃었는데


딸은 카드를 보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 내가 정말 그렇게 동생에게 안 좋게 했어?”



우리는 또 한 번 웃었지만 딸은 그날 밤까지도 고민을 멈추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나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동생이 왜 나를 그렇게 불렀을까? 하며 다시 물었다”



그랬던 딸이 며칠 전 우리를 완전히 쓰러뜨렸다



“엄마 아빠 운동 좀 하세요 걱정돼요”



라고 말하면서 옆집 할아버지는 80 살인데도 매일 몇 시간씩 걷는다고 했다.



남편은 허리 때문에 한쪽 다리가 약간 가늘어져서 여름에 반바지를 입는 것도 꺼려했었다.



남편이 말했다.



“다리가 가늘어서 오래 걷기도 힘들어”



그러자 딸이 아주 정색을 하며 강하게 말했다.



“옆집 할아버지는 다리가 바늘이야”


“진짜로”


그 순간 우리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비즈니스를 보러 다닐 때 한국 분들이 운영하는 가게들도 보았다.


하루 종일 혼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았었다.



뒤쪽에 들어가서 보면 테이블 아래엔 자식들의 사진이 숨겨져 있거나 낡은 성경책이 놓여 있었다.


마음이 짠했다.


그분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오랜 시간 참고 버틸 수 있는 힘은 어쩌면 거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 아이들은 공부에 큰 욕심이 없었다.


딸아이가 고등학교쯤 되었을 때 물었다.


“넌 어떻게 뭘 하고 살고 싶니?”


잠시생각하고 말했다.


“그냥 좋은 엄마가 되고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나는 꿈이 너무 평범하다고 느껴 조금 실망했다.



그래서 이번엔 아래층에 있는 아들에게 내려가서 물었다


“넌 어떻게 살고 싶어?”



아들은 단번에 말했다.


“좋은 여자랑 결혼하고 좋은 아빠가 되는 거요.”


딸과 같은 대답이었다.



“그건 누구나 다 하는 거잖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린아이처럼 대통령 의사 과학자 변호사

같은 목표가 높은 대답을 기대했던

내가 조금 멋쩍었다.



둘은 결국 자신들이 좋아하는 길을 택했다

딸은 애니메이션을 배우기 위해,

아들은 연기를 배우기 위해 둘 다 밴쿠버 필름스쿨에 들어갔다.



밴쿠버 필름스쿨 졸업식 때 교장선생님을 만났는데

아들이 재능이 있으니 꼭 계속해서

연기 공부를 시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들은 맥도널드 햄버거 광고

오디션에 합격해 오랫동안 TV를 틀 때마다

햄버거를 먹는 모습으로 나왔다.


맥 더블이 처음 나왔을 때였다.



주위사람들과 아들 친구들이 무척 놀라워했다.


무척 자랑스럽고 행복했다.



장밋빛 꿈을 잠시 보았으나 그 후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화 단역으로도 출연했지만

캐나다에서 동양 사람이 주연을 따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때 같이 공부했던 유명가수의 조카는

한국으로 돌아가 연기도하고

관련 사업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들은 나와의 대화는 별문제가 없지만

한국어가 서툴러서 한국 쪽으로는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디션을 볼 때면 대본을 가지고

내가 상대역이 되어주며 연습을 했다.


연습을 하고 또 하고…..



오디션을 여러 번 봤지만 안타깝게

매번 마지막까지 올라가서 떨어졌고 그 상처는 깊었다.


오디션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도 고통스러웠다.


산다는 건 긴 기다림의 연속임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결국 그는 2년 만에 몸에 타투를 새겼다.


연기를 그만두겠다는 자기 나름의 다짐이었다.



그 후엔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 1등을 했다.


무너진 마음을 근육과 땀으로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다.


아들은 전혀 다른 일로 방향을 바꾸어서 우릴 놀라게 한다.



“엄마는 내가 뭘 하면 좋겠어?” 아들이 물었다.


대통령을 하라고 그냥 생각 없이 말해줬다.


어차피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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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필름스쿨에 다니던 어느 날 아들은 캘거리에 사는 친구 생일이라고 혼자 차를 끌고 떠났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닌 우리 집 근처에 살던 친한 친구였다.



우리가 말렸지만 아들은 자신이 넘쳤다


돌아오기로 한 날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의자에 가서 앉아”



그리고 딸이 말했다


아들이 밤길에 운전을 하고 오다가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있고 다행히 다친 데는 없고

차는 폐차시켜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아들이 고속버스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을

확인하기 전까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우리가 걱정할까 봐 괜찮다고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고맙게도 아들은 안전벨트에 긁힌 자국만 있었다.



그렇게 말렸는데 잠도 안 자고

10시간이 넘게 운전하고 가서

그다음 날 친구의 이사까지 도와주고

그날 밤 학교에 가기 위해 다시 운전을 하고 온 거였다.



칠흑 같은 새벽, 길도 잘 안 보이고,

차도 별로 안 다니던 시간이었다.



아들이 잠깐 기절했다가 깨어 보니

차가 나무 사이에 끼어 있었다고 했다.



눈을 떠도 감은 것이나 다름이 없이 깜깜해서

더듬더듬 전화를 겨우 찾았다.

911에 전화를 해봤지만 전화가 안 되는 지역이었다.



전화 불빛으로 차에서 겨우 빠져나와

힘들게 찻길로 올라갔다.


지나가는 차가 없어서 한참을 기다렸다.

드디어 트럭을 세우고 도움을 요청했다.


시골 마을 병원 응급실로 옮겨지고 다친 곳이 없는지 엑스레이도 찍고 검사를 했다.


모두 정상이었다.



병원 사람들은 차가 튼튼하여 안 다쳤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차의 이름을 물어보고

다음에 차를 바꿀 때는 그 차로 사야겠다고

농담을 했다.



차는 나무에 부딪히며 움푹 파였고

다시 한 바퀴 돌아 다른 나무에 부딪혔다.



자동차 보험 회사에서 보내온 사진을 보니

굵은 나무 모양대로 도장을 찍은 듯 두 번이나

깊게 파여 있었다.


정말 하나님이 도우셨다.



그 후로 아들은 한동안 외상증후군에 힘들어했고

우리가 반대하면 어떤 일이던 멈춰서

한 번 더 생각을 해보고 결정했다.



아들은 언제나 자신이 운이 좋은 놈이라고

감사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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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인 식당에서 우리 가족이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바로 내 뒤 테이블에는 아줌마 두 분이 앉아

밥을 먹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가까워서 대화 소리가 잘 들렸다



“거기 가면 1시간에 500불을 벌 수 있대”



그 말에 나는 솔깃하여 가족들 대화는

건성으로 듣고 뒤쪽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거기에는 고사리가 천지에 널려 있대”



그리고 이어진 한마디에 그만 빵 하고 웃었다



“근데 곰이 여기 왔다 저기 갔다 한대*



갑작스러운 내 웃음에 가족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쉽게 버는 돈은 언제나 그만큼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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