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67세에 고아가 되다

내가 손을 넣었더라면

by 하얀 나비



어느새 시부모님이 이민 오신 지 10년쯤 되어 가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입맛을 잃고 점점 말라 가셨다.


어느 날 평소처럼 집에 들렀는데 깜짝 놀랐다.


시어머님이 머리에 피와 머리카락이 엉켜 붙은 채 잠들어 계셨다.


침대에서 떨어지시며 히터 모서리에 머리를 다치신 것이었다.


시아버님은 아무 일도 모르고 주무시고 계셨다.



그 후부터 시어머님은 아무도 없는데도 누군가 있다고 하시며 무서워하셨다.


결국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고 우리는 매일 같이 시아버님과 함께 어머님을 찾아뵈었다 처음엔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지만 점점 요양원에 잘 적응하셨다.



그곳의 직원들은 친절하고 따뜻했다. 시어머님은 조금씩 편안해지셨다


시어머님이 요양원에 가시고


시아버님은 혼자 지내셨다. 황반변성이 점점 심해지셨지만 익숙한 집이 편하시다며 끝까지 그곳을 지키셨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르게 계속 주무시기만 하셨다.



응급실로 모시고 갔을 때 들은 말은 믿기 어려웠다. 간암 4기였다.


얼마 후 참전용사 요양원에 자리가 생겨 그곳으로 들어가셨다.


친구들이 요양원을 방문하기도 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과 밥을 같이 드시기도 하셨다.


우리는 거의 매일 아버님이 계신 요양원에 먼저 들려서 아버님을 모시고 어머님 요양원에 갔다.


두 분은 서로의 손을 잡으셨다.



아버님은 우리가 병원에 모시고 가서 표적 방사선 치료와 수혈을 교대로 받으셨다.


아직도 나는 시어머님을 방문할 때면 남편뒤로 서 있었다.



그로부터 반년 뒤 아버님은 참전용사 요양원에서 넘어지시며 머리를 다치셨고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참전 용사 친구들이 와서 큰 별이 졌다고 슬퍼하셨다.


어머님께 소식을 전했는데 담담히 받아들이셨다.


“강물에 잘 뿌려드려서 물 따라 여기저기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해 드리라고 하셨다..


나도 나중에 똑같이 그렇게 해달라고도 하셨다.



매 순간 시아버님 때문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었고 나에게도 언제나 넘치는 사랑을 주셨다.


가게에 매일 출근하는 우리를 위해 비싼 마사지 기계를 우리에게 사주셨다.



우리가 해드려야 할 일들을 거꾸로 받고 있었다.


잘해드리지 못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언제나 엄마에게만 잘하라고 하셨고 시아버님은 친구들과 같이 병원에 가시기도 하셨다.



그때 우리에겐 늦게 사춘기가 온 아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부모님의 고통과 아들의 힘듦이 겹쳐서 우리도 더욱더 힘들었다.



아들이 노트 한 장을 찢어 그린 그림을 가져왔다.


위쪽 그림에는 자신이 왕관을 쓰고 망토를 두르고 의자에 앉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그리고, 아래쪽 그림에는 우리 부부가 텔레비전을 보며 웃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우리가 자신의 슬픔을 공감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아래층 그림을 지우고


우리 부부가 깨부수고 험하게 싸우는 모습을 그려서 아들 방문 아래로 밀어 넣었다.


잠시 후 아들이 그 그림을 들고 웃으며 내려왔다.



“우리라도 웃는 게 낫잖아.


왕이 되려면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지”



그 후로 아들은 하루 종일 비치에 나가 혼자의 시간을 갖고 성장의 고통을 이겨냈다.



결혼하면서부터 시아버님은 무슨 일이건 해결해 주시는 해결사셨고 나를 굳게 잡아주신 분이셨다.



먼 타국땅에 오직 우릴 믿고 오셨는데 여기서도 우리는 아버님의 보살핌을 여전히 받고 있었다.



남편이 허리가 아파서 꼼짝도 못 할 때


물건을 못 사 오니 담배가 더 이상 없어서 못 팔았다.


내가 운전을 못해서 꼼짝도 못 하고 있었고 아이들도 어렸다.



시아버님은 친구를 동원해서 우리 밴을 끌고 코스코에 모이셨다.


지팡이를 짚으신 아버님이 차에서 당당하게 내리시더니 말씀하셨다.



“어미야 어느 쪽으로 갈까?”


눈이 잘 안 보여서 팔을 잡아드렸다.


시아버님의 다리도 힘이 없어 보이셨다.



친구분들이 내 곁에 호위병처럼 지키고 서계셨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슬프고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했다.


담배를 사고 나왔는데 문제가 생겼다.



시아버님 친구분 중 한 분이 우리 차를 운전하셨는데 이상하게 차가 뒤로만 갔다.


“어 왜 이러지 차가 뒤로만 가”



약간 비탈진 길에 주차해 있던 차가 뒤로만 자꾸가고 마침내 길을 가로막고 차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나가려는 차와 들어오려는 차가 막혀 순식간에 줄이 길어졌다.


차가 고장이 났다면 큰일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차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패닉에 빠져있을 때 운전하시던 할아버지가 시동이 안 걸렸음을 그때야 알아채셨다.


발만 떼면 차가 뒤로 흘렀던 거였다.



그리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자기차인데 그것도 몰라?”



그 할아버지는 땀을 뻘뻘 흘리시고 그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기다리던 차들도 꼬리를 물고 물고기처럼 빠져나갔다.


나도 시동이 켜있는지 안 켜있는지 당연히 엔진 소리도 안 들렸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림이 그려지고 웃음이 난다.


운전하셨던 할아버지는 그렇게 난처한 순간은 처음이셨을게다.



그때 그분들은 모두 멋진 청년 참전용사의 모습으로 내 마음에 남아있다.



21층 세탁기 물사고가 났을 때도 아버님과 친구분들이 주민 회의실에 자리하셨다.


보이지 않는 압력이 느껴지자.


관리소장이 회의가 끝나자마자 급하게 나갔다.



시아버님은 그처럼 우리가 손을 내밀면 언제나 온 힘을 다해서 도와주셨다.



어머님 말씀대로 우리는 바다로 향해 가는 강물에 화장재를 뿌려드렸다


자유롭게 고향 황해도에도 가시고 한국에도 가시라고…



남편은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이 좋은 세상에 못 고치는 병이 어디 있냐고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도 말하셨었다.


그리고 황반변성을 고치는 치료법에 관한 소식도 기다리셨었다.


남편은 온종일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산에 뻐꾸기 울면 ~~”


모란 동백을 들으며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남편은 우울증이 와서 오랫동안 밥도 못 먹고 야위었다.



다행히 시어머님은 점점 건강이 좋아지셨다.


몸무게도 많이 늘으셨다.


밖에서 식사를 하고 모셔다 드리면 이제 가라고 손짓을 하시며 활짝 웃으셨다.


요양원 안에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장소에 오신 듯 남자 직원들과 표정과 손짓으로 농담도 하시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셨다.



“참 귀엽고 좋은 분이세요”



모두가 시어머님을 그렇게 말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하시지만 눈치도 빠르시고 말이 필요 없는 대화가 잘 오고 갔다.



시어머님이 캐나다에 오신 뒤 무릎 통증이 심해져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주사를 맞으셨다


의사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조심스레 여쭈었다


어머님은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언제가 제일 행복하셨어요


시어머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웃으며 대답하셨다


막내아들 장가보낼 때가 제일 행복했지



더 이야기를 나누기 전 우리 차례가 되어 이유는 듣지 못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한동안 이유를 생각했다


예쁜 며느리를 얻어서 그런 건 분명 아닐 테고….



시어머님에게도 사랑하는 자식만큼 어려운 존재는 없었던 것 같다


막내아들은 시어머님에게 가장 무서우면서도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사랑이었다


막내아들은 가끔


“집이 무슨 호텔 같아”


하고 투덜대기도 했고


이모님과 다툴 때도 아들 앞에서는 조심하셔야 했다.



한 번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도 있었다


장을 봐서 두 손에 가득 들고 집에 오면 큰아들은 "아이고 이렇게 무거운 걸 왜 들고 다녀"


하면서 맨발로 뛰어나와 받아 주는데 막내는 받아 주지는 않고 쫓아와서


"장바구니부터 뒤적거려 맛있는 게 뭐 있나 하고 그래서 섭섭했지."



막내아들을 장가보내던 날


시어머님은 드디어 긴 숙박에서 풀려난 것처럼 자유를 느끼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내가 결혼을 했다고 해서 부담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시어머님은 그 뒤로도 계속해서 막내아들에게 늘어난 가족까지도 보살펴야 했기에 때때로 지치고 때때로 좌절하셨던 것 같다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칼의 날 쪽을 잡게 된다. 사랑받는 사람이 칼의


손잡이를 잡아 그가 휘두르는 대로 칼의 날을 잡고 있는 사람은 다치게 된다.



원래 시어머님은 성격이 까다롭고 손주들을 볼 때 말고는 잘 웃지 않으셨었다.


그나마 남편이 시어머님을 웃으시게 했다.



그런데 점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계셨다.


이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의문이었다.


노화가 진행되고 있으셔서 세월을 거슬러서 원래의 좋았던 성격이 나오신 건지….


우리는 다른 사람이 시어머니 모습을 하고 계신 것처럼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시어머님은 남편보다 나를 더 반기셨다 멀리서만 봐도 손뼉을 치며 반가워하셨다.


남편이 어리둥절하였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았지만 받아들였다.


시아버님께서 시어머님이 나를 좋아하신다고 하셨던 말이 생각났다.



어느 날 아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고맙다” 모든 게 함축된 그 한마디에 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그토록 호랑이 같으시던 분이 이렇게 부드럽게 변하시다니.


나는 순진하게 웃고 계신 얼굴의 어머니로부터 얼굴을 돌렸다 눈물을 감추려고.


그동안의 서러움이 한순간에 어이없이 무너졌다.


그 뒤로 요양원을 방문할 때 남편의 뒤에 숨지 않았다.



코비드가 있을 때 유리창을 가운데 두고 서로 전화기를 들고 대화했다.


돌아가신 분들의 사진이 하나 둘 요양원 벽난로 위에 올려져 있었다.



이 불안한 상황에 잘 견디어 주시는 모습이 고마워서 돌아오는 계단 위에서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어느 날부터 시어머니는 우리를 언니 오빠라고 부르셨다


“아들이잖아요 아들”


그러면 피식 웃으며 못 이기는 척 “그래 아들이다” 하셨다.


이젠 우리를 점점 잊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남편이 얼굴을 비비면 여전히 기뻐하시며 밝게 웃으셨다.


직원에게 우리를 못 알아보시는 것 같다고 했더니 알아보시는데 단지 호칭을 잃어버리신 거라고 했다.



98세가 되던 해 요양원에서 전화가 왔다 조금 속이 불편해하세요 그냥 알려 드리려고요.



그 말에 불안한 예감이 들어 남편과 함께 서둘러 달려갔다.


요즘 잘 못 드시고 계셨고 숨 쉴 때마다 할머니처럼 소리가 났었다.


시어머님은 산소호흡기를 끼고 누워 계셨다 우리는 양쪽에 앉아 손을 잡았다 예전에도 산소호흡기를 끼고 계셨던 적이 있었기에 우리는 다시 괜찮아지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기침하시듯 쿨럭거리시며 오르락내리락하던 가슴이 옅어지는 것 같았다.


산소호흡기에 입김이 안 보이는 것도 같았다 우리는 간호사를 불렀고 잠시 후 “돌아가셨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어머님 손을 꼭 잡고 꺽꺽 울었다.


양쪽으로 맞잡은 손의 온기가 천천히 사라져 갔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그동안 힘든 세상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좋은 세상에서 이제 편히 쉬세요.


사랑하는 아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사 어머님은 98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날 남편은 67세의 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요양원에서 일하시는 간호사 선생님이 우리에게 조용히 말했다.


“가족을 기다리시다가 가족을 보고 편히 가신 것 같아요


제가 일하면서 이런 경우를 몇 번 봤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 한쪽이 더 미어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만을 기다리셨다는 그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 깊은 곳이 오래도록 아려 왔다



아버님을 보내드린 곳에서 어머님도 보내드렸다.


우리는 자주 그곳 강가에 강아지 코코를 데리고 가서 잘 계시냐고 우리도 잘 있다고 인사를 드린다.



이후로 나는 가끔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때는 겨울이면 연탄불에 큰 솥을 올려놓고 물을 데워서 사용하였다.


세수를 하려고 물을 떠서 돌아서는데 강아지 비명소리가 났다. 추우니까 솥뚜껑에 올라갔다가 빠진 것이었다. 깜짝 놀라 달려가니 강아지는 뜨거운 물속에 있었다.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해서 소리를 질렀다.



이모님 아들이 급하게 나와 쇠집게로 건졌다. 그러나 강아지는 끝내 숨졌다. 그때 내가 왜 손을 집어넣어 빨리 꺼내지 못했나를 생각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언제나 있었다.



할머니도 생모도 큰엄마도 아버지도 작은엄마도 시아버지도 시어머니도 내가 손을 빨리 넣었더라면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 나는 오랜 시간 품고 살아온 사람들을 하나씩 떠나보내며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본다.



나는 여전히 이곳에 있다 아침이면 초록빛 정원의 햇살을 보며 오늘 하루도 감사히 시작한다


어쩌면 내 안에는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도 생모의 눈빛도 아버지의 목소리도 시어머니의 미소도 모두 고스란히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삶이 나를 만들었고


이제 나는 그들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하고 싶은 일은 남은 가족과 웃음을 나누고 서로 바람막이가 되어주며 오직 좋은 추억만을 새로 만들며 사는 것이다.



살아온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 시간들은 내 안에 여전히 숨 쉬며 오늘의 나를 다정하게 품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이만하면 괜찮다고 수고했다고 나 자신에게도 조용히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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