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나무골 순이
해오름의 붉은 기운이
잠든 마을을 흔들어 깨울 때면
강바람 타고 밀려오는
찔레꽃 향기에
나그네도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한결 가벼워진
짐 보따리를 챙겨
길을 나선다
여우비를 피해
낯선 집 처마밑에 선 나그네는
멍하니 상념에 젖는다
하얀 배꽃 눈되어 내리던
어린 날의
미소가 예뻤던
배나무골 순자는
어느 하늘아래 잘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구절산 진달래가
한껏 진분홍으로 타올라
온 산 빛을 바꾸고
공연히 설레었던 시절
나그네 가는 길
가는 방향도
가는 이유도
알지 못하고
묻지도 않는다
나그네는
오늘 밤도 어디쯤에서
별과 달을 지붕 삼아
은하수를 이불 삼아
조용히 눈물 지으려나
행여 길 떠나는 나그네를
붙잡지도 마라
스쳐가는 인연일 뿐
나그네 천 리 길
갈 길이 멀다
천리길 끝에는
마중 나올 사람도 없고
불 밝혀 둔 집 또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