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밥에서 나던 서울물 냄새
할머니와 새엄마의 사이는 언제나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새엄마와 아버지는 오빠만 데리고 서울로 떠났다.
그날 이후로 술에 취한 할머니의 노래와 눈물이 잦아졌다
“석탄 백탄 타는 데는 ~~"
할머니가 뒷마당 장독대에서 물을 한 그릇 떠놓고
두 손을 모으고 계신 걸 보았다.
할머니와 같이 잘 때면 숨소리가 쇳소리를 냈다
나는 답답한 그 숨소리를 들을 때마다 할머니가 많이 아프신 게 아닐까 하는 불안함을 느꼈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침에 일어나면 괜찮아 보이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와 작은 엄마도 뒷산 언덕 너머에 작은 집을 얻어 나가셨다.
할아버지는 조용한 성격의 둘째 며느리와 잘 맞았다.
큰아들과 새엄마가 없는 집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의 존재가 더 눈에 거슬렸던 것 같다.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새엄마와 아빠는 나를 서울 학교에 보내야 한다며 서울로 데려갔다.
할머니와의 첫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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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당산동에 위치한
서울의 집은 아주 작았다.
방하나와 조그만 부엌이 전부였다.
대문 하나 안에 크기가 다른 집이 세 개
떨어져 자리했고 네 가구가 세 들어 살고 있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정 방문을 오셨는데
고개 돌릴 것도 없이 한눈에 보이는 우리 집을 보고
놀라신 것 같았다.
선생님은 새엄마가 드리는 천 원짜리 한 장을
끝내 받지 않으셨다.
자기 집에 선생님을 모시고 가려고 따라온
친구들은 대문밖에서 기다렸는데 나중에
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야 너희 집 부자구나. 이렇게 큰 대문 안에
집이 몇 채나 있으니”
그러나 곧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된 친구들은
나를 불쌍하게 생각했고 나를 도와주려고
돈을 모으자고 했다.
나는 당황하여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아이들 모두 마음이 참 따뜻했다.
그중에 한 여자애는 아버지가 의사였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그 친구집에 가끔 놀러 갔다.
시장 골목을 지나서 2층인가 3층
병원 건물이 자기 집이었다.
그 아이의 방에는 침대가 있었는데
그 애는 내가 갈 때마다 신기한 걸 보여줬다.
침대 끝에 똑바로 서서 꼿꼿하게 뒤로
넘어지는 거였다.
침대가 출렁이며 그 애의 몸을 받쳐줬다.
그 애는 그것을 몇 번 더했다.
나는 신기해서 그걸 바라보았다.
바닥에 깔아도 뼈가 닿아
돌아누워야 하는 우리 집
이불을 생각했다.
내가 집애서 저렇게 했다간
크게 다칠게 분명했다.
그 애에겐 앞으로의 인생을 받쳐줄 든든한 매트리스가
이미 준비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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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대문 안쪽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살았다.
대문 앞 첫 번째 집은 남편이 술만 먹으면
부인을 때려서 몇 번이나 부인이 숨겨달라고
머리가 산발한 채 맨발로 우리 집에 뛰어들어왔다.
남편이 술이 깰 때까지 부엌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언제 갔는지 아침에 일어나면 없었다.
다음날 집 앞에서 마주친 부인은
아무 일 없는 듯 보여 신기했다.
평소에 남편은 얼굴도 잘생기고 얌전했다.
대문으로 들어와 가운데 집은 그 대문 안에서 제일 넓었다. 그 집이 주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집에서는 내가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맛있는 냄새가 자주 났다.
유리문을 달은 넓은 마루에서
많은 가족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그 음식을 먹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유리문 앞에서
그 냄새를 맡고 서 있었다.
그 집 아주머니가 나를 발견하고 들어오라고 하면
나는 도망쳐서 집으로 왔다.
그 일을 알게 된 새엄마는 창피해 죽겠다고
눈을 흘기시며 나를 혼내셨다.
세월이 흘러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냄새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짜장 소스 냄새였다.
새엄마에게 그렇게 혼나면서도 그 냄새가 날 때마다
그 집 앞을 서성거렸던 이유가 뭘까?
음식냄새도 향기로웠지만
가족들이 모여 웃고 떠드는 게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새엄마는 오빠와 나를 물을 데워서 집 앞
돌판이 있는 수돗가에서 목욕을 시켜주셨다.
가끔 이쪽으로 돌라며 손으로 나를 때리셨다.
나는 그때가 제일 창피하고 싫었다.
아픈 것보다도 누군가 나의 이런
수치스러운 모습을 볼까 봐 두려웠다.
서울밥에서는 서울물 냄새가 났다
그러나 김치 하나만 놓고도 양은 냄비에 갓 지은
밥은 꿀맛 같았다.
아버지는 잘 익은 김치를 쭉쭉 손으로
찢으시며 말하셨다.
이렇게 쌀밥을 먹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하셨다.
잘 익은 김치가 배보다 맛있다고 하셨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살짝 얼은 듯하면서 아삭하게 익은 그런 맛은
그때 이후론 맛볼 수 없었다.
부엌의 연탄 냄새와 벽 넘어 자동차 학원에서
휘발유 냄새가 바람을 타고 넘어왔다.
나는 처음 맡아보는 휘발유 냄새가 좋아서
숨을 들이마시며 냄새를 맡았다.
아빠는 목수일을 하셨다.
어떤 때는 한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고
공사하는데서 주무셨다.
어느 날은 자다가 쥐한테 입을 물려서 오셨다.
입술에 두 개의 구멍 같은 상처가 있었고
주위가 빨갛게 퉁퉁 부어 있었다.
자다가 얼마나 놀라고 아팠는지를
여러 번 얘기하셨다.
쥐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참
이상하다고 하셨다.
어떻게 하면 쥐에게 안 물리고 잠을 잘 수 있는가를
궁리하셨다.
그러면서도 계속 공사하는데서 주무셨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군대에서의
죽을뻔했던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셔서
새엄마랑 밤새 싸우셨다.
오빠와 나도 아버지가 잠들 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벽돌로 만든 담벼락 옆에 아버지가 대패질을 할 수 있게
나무로 만든 어른 허리쯤 높이의
좁고 긴 선반 같은 게 있었다.
새엄마와 아빠가 나가시고 혼자 있을 때는
거기에 올라가 구멍이 뚫린 벽돌 사이로
아주 넓은 운동장 같은 자동차 학원을 지켜봤다.
신진 자동차라고 글씨가 찍힌 몇 개 안 되는
예쁜 색 차들이 천천히 돌기도 하고
두 사람이 내려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지루했지만 그곳은 또 다른 세상을 지켜보는
나만의 비밀장소였다.
새엄마는 사과가 들어있는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나가 장사를 하셨다.
가끔 깎아서 팔고 남은 사과 껍질을 집에 가져와
끓이면 그 냄새가 조그만 집안을 가득 채웠다.
우린 향긋한 그 물을 마셨다.
방하나에 네 식구가 함께 잤다.
좁아서 벽에 바짝 몸을 붙이면 차가운
냉기가 몸으로 스며들었다
새엄마의 차가운 눈빛이 항상 존재하는
서울 구석진 방에서 나는 밤마다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소리 죽여 울었다.
베개는 늘 축축했다.
새엄마가 이 베개의 얼룩진 눈물자국을
본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나를 불쌍하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부터 이상하게도 잠을 자려고 누우면
꼭 오줌이 마려웠다 금방 다녀왔는데도 또 그랬다.
그러기를 몇 번 하면 새엄마는
일부러 그런다며 나를 혼내셨다.
나는 새엄마의 눈에 들고 싶어서 노력했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지만 집안일을 도왔다
새엄마가 나갔다가 집에 와서 웃으시는 걸 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엄마가 심각하게 말하셨다
산부인과 병원에 갔더니 나팔관이 약간 삐뚤어져서 임신이 안되었던 거라고 수술을 하면 아기를 가질 수 있다고 의사가 말했다고 하셨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엄마와 함께 우리 셋이 다 쫓겨나면 어쩌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냥 우리를 키우시는 걸로
마음을 먹었다고 하셨다
낳자마자 품어서 키우신 오빠에 대한 사랑이
낳은 자식과 다를 게 없으셨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겨울방학이 되자 아빠가 이른 새벽에
시골에 가자고 나하고 오빠를 깨우 셨다
“기차 타러 가자”
무릎까지 눈이 쌓인 새벽길을
아빠는 졸린 나를 들다시피 하며
첫 기차를 놓칠까 봐 정신없이 걸었다.
우리가 겨우 기차에 올라가 앉았을 때
기차는 천천히 움직였고 나는 캄캄한 창밖에
눈 내리는 풍경을 내다봤다.
그리고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기차에서 모처럼 아빠품에 안겨
아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나는 서울에서 혼자가 아니었구나.
아빠가 있었구나.
아빠품에서 나의 고귀함이 고개를 들었다.
아빠품에서 깊이 잠들었다.
기차가 더 오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할머니를 보고 싶어서 빨리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두 팔 벌려 나를 반기셨다.
마치 험한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을 맞이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 앞에서 나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닌 것처럼
어깨를 으쓱했다.
다음 날 아버지는 오빠와 나를 남겨 두고
방학이 끝날 때쯤 데리러 온다며
검정 코트깃을 올리시고 다시 서울로 가셨다
주먹만 한 눈이 펑펑 내렸다
할머니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눈 속으로 사라지는
아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랫동안 바라보며 울고 계셨다.
할머니가 아빠를 많이 사랑하고 계셨다.
내가 자주 오줌을 누는 걸 아신 할머니는
멀리 한의원에서 약을 지어 오셔서 끓여주셨다.
이틀도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그 증상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약 한 첩이면 될 것을 애를 고생을 시켰다고
나중에 할머니는 새엄마를 혼내셨다
방학 동안 나는 전처럼 할머니의 아기가 되어서
다시 밝아지고 자신감이 넘치고 행복했다.
할머니는 "장수만세"라는 라디오 프로를 잘 들으셨다
할머니의 꿈은 우리 가족과 "장수만세"에 나가는 거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나도 할머니와 함께 "장수만세"에 출연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러나 그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