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일찍 오지 그랬어 "
중학교 2학년 때 새엄마와의 불화로
갑자기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나는 우등생이 아닌
평범한 여중생이 되었다
친구를 만드는 것도
관심이 없었다
도시락을 안 가져오는 날은
빵하나를 먹고 혼자 운동장을 걸었다
우연히 나처럼 친구가 하나도 없는
조용한 아이와 말을 하게 되었다.
그 애는 수줍음이 많고 여드름이
많이 났고 얼굴이 자주 빨개졌다.
집의 방향도 같아서 같이 버스를
타고 가면 그 애가 먼저 내렸다.
나와 어울리며 그 애는 많이 웃었고
우리는 어느새 단짝이 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생각이 통했고
아무도 없던 내게 의지가 되었다.
그 애의 집에 가서 부모님도
만나 뵙고 별거 아닌 일로도
깔깔거리며 재밌게 놀았다.
우리 집에는 그 애를
데려오지 않았다.
나의 초라한 방을 보여주기 싫었다.
내가 실업계를 가게 되고 그 애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면서
우리는 연락이 끊겼다.
전화도 없던 시절 각자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쯤 문득 그 애가
잘 지내는지 궁금했다.
생각해 보니 그 애가 나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기억을 더듬어 골목길을 돌고돌아
한 대문 앞에 섰다.
벨을 누르니 그 애의 엄마가 나왔다.
“맞게 찾았구나”
안도할 겨를도 없이
그 엄마는 나를 보자 털썩 주저앉아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왜 이제야 왔어?”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서
서있었다
“그 애가 죽었어”
나는 몸이 얼어붙었고 한동안
눈물도 나지 않았다
과외를 받으며 대학교에
들어가려고 공부를 했었는데
갑자기 딸이 실종이 되었다고
하셨다.
사방팔방으로 찾던 중 아주 먼
지방 깊은 산속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경찰에게 연락이
왔다고 하셨다.
자살이라고 하셨다.
유서가 함께 있었다고 하셨다.
“조금만 일찍 오지 그랬어?
그 애가 너를 보고 싶어 했는데”
어머님의 눈물은 끊이지
않으셨다.
대문밖을 나오는
나를 배웅하시며 자주
와달라고 부탁하셨다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버스를
안 타고 한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그토록 여리고 약했던
그 애가 무슨 이유로
세상까지 포기했을까?
어머니가 자살한 이유가
과외 선생과의 문제라고
얼버무려 말씀하셨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엄마의 말대로 내가 일찍
왔었더라면 그 애가 죽지 않았을까?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그 일은 내게
죄책감이 들게 했다.
다시 찾아 달라고 하셨지만 그 후로
가지 못했다.
그 애가 없는 집에 내가 돌아가
어머니를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혹시라도 어머니의 아물고 있는
상처를 건드릴까 염려되었다.
그 애는 여드름이 많이 났던
중학생 천진스러운 모습 그대로
늙지도 않고 영원히
내 마음속에 아프게 남아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살아갈 이유가 되는 세상.
혹시 내가 잠시 잊고 있던 사람이
홀로 힘들어하고 있는지
주위를 둘러봐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