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꽃 사랑 1화

소설 연습

by 하얀 나비


집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이

이 집에 누군가 살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듯했다.


그가 불을 켜자 어둠이 걷히고

거실의 물건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탄력이 없어져 주름진 검은색 소파가

앉았던 사람의 자국을 간직한 채

피곤한 듯 느리게 눈을 떴고


벽 한쪽에 붙여져 이젠 쓸모 없어진

4인용 식탁의 의자 하나만 테이블의

그늘에서 삐죽이 나와 그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TV는 소리 없는 가구가 된 지

오래된 듯 흑백 거울처럼 거실을

반영하고 그릇 몇 개와 포크

한 개가 싱크대에 반쯤 물에

잠긴 채 여유를 부리고 있다.


그는 부엌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물에 잠긴 그릇 위에 손을 대려다

차가운 물이 손등을 스치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놓는다.


소파로 돌아와

주름진 팔걸이에 손을 올리고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긴다


이것이 그녀가 원하던

삶이었던 게 맞는 걸까?


마흔셋, 혼자의 집, 겨울의 밤.

잃은 것보다 포기한 것이

많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나쁜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어제

까지의 시간들.

지금은 멍하니 그냥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에겐

휴식으로 느껴졌다.


적당한 온기 속 고요함이 그를

쉬게 했고 그는 자신이

숨 쉬고 있음을 비로소 느꼈다.


배에서 소리가 날 때쯤 그는 코트를

집어 들었다.

이곳을 벗어나는 게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로등이 희미하게 길을 비추고

상가 건물 2층 카페엔 사람들이

다정하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애써 고개를 돌리고 길 건너

식당에 들어가 몸을 숨기 듯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뜨거운 국밥을 입에 밀어 넣듯이 먹고

길을 나선다.

차가운 바람이 그의 품을 파고들고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어떻게든 가정을 지켜보려고 했던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내 잘못이 아니었지만 빌고서라도

깨고 싶지 않았던 가족이라는 이름.


한번 돌아선 그녀의 마음은

콘크리트만큼 무겁고 단단했다.


나의 어떤 게 그녀를 그렇게

돌아서게 만들었을까?


그의 옆을 차들이 빠르게 스쳐갔고

차가운 공기가 귀를 아리게 해서

아픔으로 느껴졌다.


내일을 위해 집으로 가야만 한다는

변함없는 현실이 그를 생각에서

깨어나게 했다.

발을 돌려 집으로 향한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익숙한 냄새가 스친다

식탁 테이블 위 종이가

놓여 있다.


그의 심장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