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립' 만들기
같이 코스트코에서 큰 장을 보고 온건 벌써 몇 주 전이다. 코스트코엔 양을 너무 크게 팔아, 생각하면서 엘은 별 계획 없이 등갈비를 집어 들어왔다. 겨울이니 한 번은 찜이라도 해 먹을 때가 있겠지, 생각이 들어서였다. 계획 있는 소비를 하자고 늘 다짐하지만 그것은 다짐일 뿐. 어쨌든 계획에 없던 등갈비를 그때 사 온 건 퍽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엘의 생일날 풀어놓을 게 없을 뻔했다.
정말 사는 게 별거 없다는 걸 아는데도, 생일은 그 이유만으로 하루를 즐겁게 보내도록 스스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생일이니까 싫은 사람은 만나지 말아야지, 생일이니까 일 하지 말아야지, 생일이니까 특별난 걸 나눠 먹어야지. 외출을 끝내고 돌아온 엘은 퍼뜩 생각난 등갈비를 집어 들어 급하게 핏물을 뺐다. 오늘 같은 날은 립을 만들어 먹어야 한다. 제이나 케이, 엘 모두 특별한 날에는 고급(져 보이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야 한다는 광고를 보며 자란 세대다. 원가족과 가본 기억이 많지 않아서, 사실 그런 곳에서 팔던 메뉴만 봐도 엘은 벌써 특별한 날이라거나 신나는 기분이 들었다.
외출에서 바베큐 소스를 사서 돌아온다는 걸 엘은 늘 그렇듯 까먹었고, 집에 있는 기본 소스로 양념을 만들어야 한다. 오븐에 립을 모두 익힐 인내심은 없어서, 핏물을 다 뺀 고기를 인팟에 넣고 잠깐 익힌다. 부드럽게 고기를 익히기에 인팟만큼 빠르고 간편한 조리기구가 없다고 엘은 생각하는 편이다.
고기가 익는 동안 집에 있는 소스를 죄다 꺼내 모아 본다. 케첩과 마요네즈, 허니 머스터드가 조금 남아 있고... 샐러드드레싱을 여기다 넣는 건 인간적으로 좀 아니겠지. 다시 넣어둔다. 팬에 집에 남은 버터를 녹여 다진 마늘을 같이 좀 볶고, 적당히 마늘이 반쯤 익었을 때 케첩과 마요네즈, 꿀 조금과 간장, 굴 소스 조금을 넣고 물을 케첩 양 정도 붓는다. 비율은 모르겠고 적당히 시중에 파는 바베큐 소스 색 보다 좀 더 옅은 브라운 색 같은 것을 만든다. 보통 사람이라면 무슨 맛이 나올지 잘 모르니 양을 적당히 만들 수도 있겠지만 엘은 그럴 마음이 없다. 맛있는 걸 다 때려 넣는데 딱히 맛이 그렇게 나쁠 일이 있겠나 속 편하게 생각한다. 그런 속 편함이 엘을 계속 밥 지으며 살도록 만들어 줬다. 간을 보니 적당히 더 다른 맛이 필요해서 허니 머스터드를 좀 더 넣고 계속 졸이며 소스를 저어준다. 신기하게 적당히 립 소스 같은 맛이 만들어졌다.
때마침 끝난 인팟에서 고기를 꺼내 오븐 판에 놓고 앞뒤로 정성껏 소스를 바른다. 오븐에 넣어두고 이제부터는 혹시 고기가 타지 않을까 노심초사 오븐 램프를 켜 두고 확인한다.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다시 소스를 덧바르는 일을 반복했더니, 짜잔. 나름대로 립이 완성되었습니다!
분주하게 케이가 테이블을 세팅하고 있으니 요리에는 엘보다 아흔 한 수 더 위인 제이가 아래층에서 짜잔 티라미수 생일 케이크를 만들어왔다. 작년엔 이 케이크에 들어 있는 럼만으로 엘이 취했었다. 올해는 조금 자제해서 럼을 넣었다고 혼자 뿌듯해한다. 엘의 영어 이름 스펠을 틀리게 적어와서 셋이 한참을 같이 웃었다. 우리 몇 년을 알고 지냈는데 서로 이름도 제대로 모르냐. 아유, 원래 가까운 사람끼리는 이름 그런 거 안 챙겨도 돼.
엘의 생일을 핑계로 시작된 파티 같은 저녁과 와인과 티라미수(럼)의 시간.
이 셋만으로도, 충분히 서로 파티다.
'나름대로 립'을 완성하려면 얘네가 필요해요!
등갈비
버터, 다진 마늘, 간장, 굴 소스, 케첩, 마요네즈, 허니 머스터드, 꿀 (혹은 설탕), 물 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