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잘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100세 시대에 앞으로의 70년을 위한 초장기 리빙 프로젝트

by 박보통

혼인율, 출산율이 연마다 바닥을 치는 세태에 가장 중심에 있는 결혼, 출산 적령기의 여성으로서 하고 싶은 말은 많다. 결혼을 왜 안 하느냐 하는 질문에는 101가지쯤 되는 이유를 댈 수도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하는 건 아무래도 '책임감'의 문제라는 생각을 한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시대에 살며, 오로지 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왔던 삶이었다. 결혼이라는 단어를 두고 드는 생각은, 과연 내가 나와 전혀 다르게 살아온 타인과 한 지붕 아래 개인적인 공간을 온전히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거였다.



나의 시간, 나의 공간


시간은 금보다 소중하다고 그랬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그 유한함 때문에 더없이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무한했으면 돌아오지 않을지언정 이토록 소중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 유한함 속에서 나는 할 것이 너무 많다. 이렇게 글도 써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영상물도 봐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또 맛있는 것도 먹고 중요한 지인들과 주기적으로 만나야 하고, 다양한 것들을 보고, 다양한 곳을 방문하고, 또 새로운 것을 배우고, 창조하며 한 편으로는 커리어적으로도 이뤄야 할 것들이 있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읊다 보면 숨도 못 쉴 지경이다.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부족해지는 것 같다. 해야 할 것이 많으니 결국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진다. 만나고 싶다고 모든 지인들을 만나며 지낼 수도 없고, 이렇게 글을 쓸 때도 오늘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하고 확인하게 된다. 허투루 쓰게 된 시간은 너무 아까워서 속이 탄다. 강박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그만큼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욕심도 많다.


그래서 연애를 할 때 종종 매주 주말에 최소 1회 이상 데이트를 해야 하는 게 가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맛있는 걸 먹고 카페를 가고 드라이브를 하고, 그런 경험들이 싫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걸 매주 주말 하루를 내어서 해야 하는 스케줄이 되니 아쉬움이 남는 거다. 나에게 그 정도의 가치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 판단이 들쯤 그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내게 연애의 기준은, 이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아깝지 않아야 한다는 거였다. 솔직히 지금으로서는 자신이 없다. 내 수많은 욕심 순위 중에 연애라는 게 너무 낮은 순위에 있다.


'연애도 잘하면서 다른 것도 다 잘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요?'


당연히 있다. 내 친구는 전문직에 엄청 바쁜데 연애도 엄청 바쁘게 잘한다. 이건 개인의 문제인 것 같다. 그 친구는 늘 타인을 위해 노력하는 법을 안다. 약간의 희생도 있고, 약간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나처럼 결국 내가 우선인 사람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건 같다. 시간도 제한적이고, 해야 할 것도 많은, 하지만 남자 친구라는 존재한테 배당하는 지분의 차이인데 그러면 그 간극은 결국 나머지에서 쪼개져서 채워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간극이 벌어지고, 벌어지고, 또 벌어지다가 결혼을 하게 되면 남편에게 주어지는 배당은 현저히 커진다. 아이가 생기면, 그보다 조금 더 그럴 거다.


나는 남자 친구 대신 친구와 지인들에게 시간을 좀 더 할애하기로 했다. 남자 친구 대신 좀 더 자유로운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남자 친구 대신 그 부산물로 주어지는 '서운함, 책임감' 같은 것들로부터 등을 돌리기로 했다. 어릴 때는 낭만과 감성 속에서 '사랑'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너무 없다. 신기하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없다. 내가 살아온 모든 날들은 24시간으로 변함이 없는데 말이다. 느려진 건, 피부 재생 속도 정도인 듯하다.


그리고 공간이야 말로 시간이 머물 수 있는 가장 큰 그릇이다. 한 지붕 아래 누군가가 계속 나와 머물고 있다면, 내 시간도 그와 공유되는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내 시간이 온전히 나의 것일 수가 있을까? 간단히 뭘 보고, 뭘 먹는 모든 순간을 타인과 끊임없이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시간이 24시간으로, 1440분으로 생각되는 게 아니라 입자처럼 더 잘게 쪼개져 있는 듯한 감상마저 든다.



합리화하는 거 같은데...


누군가는 합리화라고 할 수 있겠다. 적당한 사람을 못 만나서, 또는 아무도 만나주지 않아서, 또는 결혼하기에 부적합해서 있어 보이려고 말하는 거 아니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정말로 나도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있어 보이는 척 구구절절하고 있는 건 맞다.


그렇다고 내가 열렬하게 열거한 내용이 거짓말은 아니다. 내가 '결혼'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가장 큰 스텝이 '시간과 공간 공유'인 것은 정말이다. 정말로. 나는 내 공간이라고 일컫는 집이라는 곳에서 타인이 화장실을 쓰는 소리를 듣는 것도 싫고, 남이 입고 놔둔 옷가지들을 보며 살 자신이 없다.


같이 맛있는 것을 해 먹고 같이 넷플릭스를 보는 행위는 좋다. 나는 향후 셰어 하우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이유는 요리한 것을 나눠먹고 같이 영화 볼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각자 집에 가지 않는다면 일이 많이 복잡해진다. 그럼 나는 언제 쉬어야 하지... 셰어 하우스를 하게 되더라도 나는 반드시 개인 거주구역을 따로 만들 것이다. 아주 길고 긴 복도를 만들고 화장실을 머릿수에 맞춰서 잔뜩 만들어야 할지라도 말이다.


이러한 가치관이 잘 맞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곤 생각한다. 하지만 우선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까 나는 나의 삶을 사는 거다. 말하고 보니, 혼자 살아보자고 결심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있다 보니 혼자 살아보게 되었네? 가 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게 말이다. 구혼자가 한 10명쯤은 있어야 난 혼자 살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지금은 그냥, 어쩌다 보니 혼자 살 거 같군요, 정도의 포지션이다.



아무튼 앞으로의 몇십 년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정말 잘 살았다고 소문날까? 에 대해 고민해 본다. 소문은 안나도 좋지만, 내 인생은 단 한 번뿐이고 때문에 이승을 떠날 쯔음에는 내가 이 하나의 생을 정말 알차고 잘 살아왔구나.라고 느꼈으면 좋겠다. 그래서 초장기 프로젝트를 실행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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