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힘든, 힘든 사람의 인간관계에 대한 묵은 성찰
인간은 혼자 태어났으면서 외롭고 난리다. 그리고 비사회인으로 세상에 나와 사회의 일원으로 적응해가는 과정을 수십 년이나 거쳐가야 한다. 사회화, 그리고 인간관계의 굴레는 태어나 죽을 때까지 영영 종식시킬 수 없는 스스로의 전쟁이다.
수도 없이 많은 생각의 과정을 거쳤다.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할까?'. 이 번듯해 보이는 사람들과 유대를 갖고 관계를 이어나가면 궁극적으로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이 오게 되는 걸까? 다들 친구라는 가치, 내 사람이라는 가치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데 내가 조금 지친다고 그런 관계들을 쉽게 놓쳐서는 안 되는 건 아닐까?
어릴 때는 내가 별나다고만 생각했다. 내게 교우관계는 좀처럼 편해지지 못하는 범주였다. 그래서 더 교우관계에 집착을 많이 했다. 돈독한 우정은 로맨스보다 위대하고, 더 끈끈하고 영원불멸의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렇게 부단히 노력하던 어느 날부턴가 인간관계에 지쳐가는 날이 많아졌다.
특별한 계기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인간관계가 버겁게 다가왔다.
이십 대를 내리 인정받는 것에 집중해 왔다.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은 결국 '타인의 인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근래의 세상은 그럴싸한 보여주기식 인생이 유행하고 있다. 인생이 유행한다는 게 우습지만, 플렉스라는 말을 필두로 하여 사람들은 이제 지나치게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인생의 가치로 삼기 시작했다. 이 내용은 차후 다시 글로 풀어보려고 한다.
어째튼 '인정'에 대한 욕구로 나는 지인들, 친구들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어떤 사람들은 애쓰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일 테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예민했던 사춘기부터 어렸던 20대를 지나면서 나에게 대인관계만큼 어렵고 복잡한 게 없었기 때문에 나는 늘 노력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다. 스스로가 다양한 부분에서 멋지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자주 주눅이 들곤 했던 것이다.
좀 바보 같은 일이었다. 특별한 계기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인간관계가 버겁게 느껴지던 서른의 어느 날. 나는 왜 그렇게 그들에게 괜찮음을 인정받으려고 했는지 다시금 고심해 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누군가가 내게 부여한 임무 같은 게 아니었음에도 나는 쉽게 예민해지고 쉽게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며 관계에서 가라앉고 있었다. 이런 관계가 나에게 과연 어떤 가치가 있을까? 지극히도 계산적인 셋 법이었다.
그리고 나를 그렇게 만드는 사람들은, 과연 그 사람들은 그만큼 나에게 가치 있게 행동하였는가에 대해 반문하면 답변은 당연한 거였다. 그렇게 나는 순수하지 못한 잣대로 그들과 나사이에 선을 그었다. 아주 빠르고, 아주 간편하게. 그만큼 마음은 편해졌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내린 결론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는 거다.
사실 우리는 너무 애쓸 필요도 없고 너무 피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좀처럼 똥을 중간에 끊는 법을 모르는 나는 중간이 잘 없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선택은 양 극단의 하나씩만 있을 뿐(똥을 다 싸거나/똥을 안 싸거나). 그래서 나는 아니다 싶었을 때 관계를 잘라보았다. 근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굳이 자를 필요까진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중간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에 나보다 더 다수의 사람들은 나보다 더 크고 잦은 인간관계를 맺고 살았으며, 그들은 매일 같이 매진하는 친구나 인간관계 말고도 적당히 방치했다가 적당히 사이좋게 지내는 많은 관계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너무 애쓰지 않고 내버려 두되, 새해가 되면 안부 한 마디는 나눌 수 있는 그런 관계 말이다.
친구 관계가 힘든데 손절할까? 인맥이 그렇게 중요한가?
인간관계 관리하는 것도 능력인가?
나는 이제 좀 확실한 기준이 생겼다.
힘들면 손절하는 게 맞다. 부정적인 관계, 나아질 가능성이 없는 관계를 애써서 유지한다고 서로에게 좋은 점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기왕이면 손절보다는 '멀어지기'가 낫다고 생각한다. 관계, 그리고 사람이라는 건 언제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르는 거라서 시간이 10년 정도 흐른 후에는 또 전혀 새로운 방향이 생길지도 모른다. 멀어지는 것도 일방적이라면 조금 상처가 되긴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에 어느 정도 빌미를 만들어 주기 때문에 손절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얇고 오래가는 지인조차도, 장거리 마라톤과 같은 인생에 있어선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인맥이 그렇게 중요한가? 에 대해서는, 정말 보고 느낀 게 많다. 어쨌든 나는 20대를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나름 좋은 인맥도 있고, 어릴 때부터 이어져온 멋진 인연도 조금 있다. 가끔 과할 정도로 성공한 사람들과 마주하기도 한다. 20대 때는 그 인맥이 다 도움이 될 거 같고, 내 힘인 거 같고,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과 같은 길에 서있다는 기분. 하지만 딱 그 기분까지였다. 그 기분 이상으로 그 인맥이라 할 것들이 도움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고 의미가 없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인맥은 내가 갖춰졌을 때 의미를 가진다. 서로의 시너지가 발생해야 달성되는 관계라는 뜻이다. 내가 가고 싶은 회사 A가 있는데, 지인이 그 부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인이라 하면 그는 나의 인맥이 된다. 하지만 정작 내가 회사 A에 갈만한 능력치가 전무하면 그런 지인을 아무리 수십 명을 둔들 소용이 없는 법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아무리 뭐하는 누구누구 같은 부류를 많이 알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능력치에 내가 시너지를 내지 못하면 그들의 조건이나 능력은 나와 하나도 상관이 없다.
'내실'. 요즘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여기다. 내실을 갖췄을 때야 인맥이라던가 인간관계 같은 것들이 좋은 작용을 낸다. 인맥 채용 같은 것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옛날처럼 무근본 낙하산은 확실히 많이 사라졌다. 회사 대표도 제 자식이 기본의 기본도 안되는걸 낙하산 시켜주려 하지 않는다. 능력이 기반이 된다는 건 아주 중요하다. 인생에 에스컬레이터는 없다. 에스컬레이터 인생 같아 보이는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 같은 사람들도 다 능력이 기반이다. 그들의 능력은 화재성, 영향력 이런 게 된다. 따지고 보면 그 어떤 것보다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 아닐까.
인간관계 관리도 마찬가지다. 나랑 비슷한 사람도 많을 거 같은데,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오래 알고 지내는 게 중요하다는 강박을 가진 적이 있다. 그래서 발이 넓고 두루두루 편하게 지내는 친구가 부럽기도 했다. 많이 본받으려고도 했다. 하지만 성정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타인이 늘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내 성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제 더 이상 타인에게 긍정적인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라고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십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타인과 인간관계에 대해 정말 많이 신경 써왔고, 노력했다. 그래서 지금 이와 같은 결론을 낼 수 있는 것 같다. 이 결론도 또 언젠가 다른 방향으로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어째튼 지금은 마음이 전보다 100배는 더 편해진 거 같다.
타인이 나에게 한 행동에 대해 예민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반대로 자신의 행동에도 예민하다. 내 행동이 그 어떤 반작용으로 그에게 영향을 줄까에 대한 생각이 어쩔 때는 정말 파도처럼 몰려오곤 한다. 누구를 만나고 온 후의 기분이 썩 좋지가 않은 경험이 잦아지고, 대화가 점점 불편하고 경직되어 간다. 편안함이 사라지는 건, 결국 스스로의 마음 가짐 때문이다. 지나치게 의식하는 내가 문제다.
이미 머리도 클 만큼 컸는데, 편한 대로 해야지.
이 정도 마음가짐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갑자기 내 인간관계가 우르르 무너질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변동은 있겠지만, 사람들과 조금 덜 가깝게 지내게 되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하다. 아주아주.
사람은 결국 혼자라는 말은, 어쩔 땐 외로움을, 어쩔 때는 자립심을, 어쩔 때는 인간 본질에 대한 생각을 끄집어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 결국 '혼자'라는 건 참 당연한 일이었다는 걸 깨닫게 한다.
우리는 혼자 태어났고,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사회에 속해서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것이다. 어느 정도 사회에 순응하는 것, 사회성을 기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로, 너무 애쓸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리고 너무 도망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말하고 싶다.
이럴 때 써먹기 가장 속 편한 말인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아예 나에 대한 생각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며칠간 나에 대한 생각을 아주 아주 가끔만 꺼낼까 말까 한 것이다. 진짜, 너무 안 중요하다. 우리도 그들에 대한 생각을 적당히 내버려 둘 필요가 있다.
만약 교우관계를 보다 더 확장시키고 싶다면, 정말 좋아하는 분야의 모임을 가는 건 추천한다. 내가 즐기는 것에 대해 진짜로 같이 즐기며 대화할 수 있는 인맥이 있다는 건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은 일인 거 같다.
쓰다 보니 길어진, 오늘의 고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