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길 문전에서 얻은 삶, 약, 그리고 남은 것들

의료 현실에서 깨달은 것들

by UI SAM
KakaoTalk_20250816_192609708_06.jpg 우이동 천관봉과 소나무

67세 겨울 12월 12일 새벽 3시쯤 목이 조여 오고 숨이 쉬기 힘들어지고 있다.

보호자를 불러 택시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걷기조차 힘에 겨워 간신히 걸어 들어가 접수를 하고 바로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는 곧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응급실에서 막 수술실로 출발하는 순간부터 이미 의식을 잃은듯하였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니 말이다.


5시간 여의 긴 시간 동안 의사 선생님께서 애쓰신 덕분에 살아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보호자에게는 3차례나 중간에 나와서 장례 준비를 할 수 있다는 통보가 있었다고 한다.


중환자실에서 정신이 들었을 때는 온몸이 묶여 있고 기계가 계속 펌핑을 하고 있었다.

물도 마실 수 없었고 입은 건조해져서 간호사에게 물젖은 거즈를 입에 물려달라고 하였다.

살 것 같다!

미음을 한 번 먹고, 죽으로 먹고 나서 일반 병실로 이전하였다. 늦은 밤이었다.

염증을 빼내는 기계를 두 개나 달고 수액은 항생제, 생리식염수, 진통제, 포도당 등 번갈아 가며 24시간 주렁주렁 달고 다녀야 했다.


5개월간의 입원 기간 동안 총 3차례의 전신마취 수술을 하고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 이식 수술을 해야 하는 일이 있어 과를 옮겨 또 1차례의 전신마취 수술을 9시간에 걸쳐서 하여야 했다.

그 외에도 수술실을 내 집 드나들듯하며 시간이 흐르니 종합병원의 악순환이라는 항생제 내성균 때문에 격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북창의 병실에서 해를 볼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참으로 견디기가 힘들었다. 격리시스템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만 방에 가두어두는 식이니 참으로 보이기식 격리방식이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상태가 되니 오히려 평온하였다.

전신의 근육은 다 빠져 간신히 발가락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머리는 텅 비어서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저 그날 그 시간 짜인 대로 순응하는 길밖에......


수액을 맞고 있으면서도 당뇨, 고지혈, 고혈압, 심부전, 지방간, 녹내장, 백내장 등 그 외에도 여러 과를 돌아다니며 진료받고 나니 나의 온몸에는 현대인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만성질환의 이름표가 매달렸다.

인슐린 주사까지 맞으며 시간마다 약을 복용해야 했다.


북창의 병실에서 하루 네 번에 나누어 2500보씩 걸어 1일 만보를 걸으며, 계속해서 약을 복용하며 삶을 유지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생겼다.

결국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을 하면서 당화혈색소가 11에서 5.2까지 떨어졌다.

물론 인슐린주사와 당뇨약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덕에 주사는 졸업하고 약은 계속 먹어야 했다.


순환기내과, 내분비내과, 안과를 순환하며 당뇨약, 심부전약, 녹내장약 등을 시간 맞춰 먹고 눈에 넣어야 하였다.

그러던 중 내가 먹던 심부전약, 당뇨약 ― 그것이 모든 고통을 부른 주범이 될 줄 몰랐다. 심장과 혈압 관련 처방받아 이미 한 달 분 약을 구입하여 약을 먹기 시작하여 얼마 되지 않아서, 혈압이 70대로 떨어지고 머리가 어지럽고 기운을 잃게 되었다. 혈압이 70대가 되면 응급실로 들어가야 한다는 동네 보건소의 권고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고, 의사는 ‘약을 끊고 갑시다’ ‘고생하셨네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정상으로 회복이 되었지요?’라는 질문을 세 번 이상 반복하며 약은 중단 하며 더는 복용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체중이 많이 감소된 영향도 있네요. 심장이 2배 이상 부었었는데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당뇨는 어땠을까. 인슐린 주사에서 알약으로 전환, 당화혈색소도 5.2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복용 사전 동의서까지 사인해야 하는 약을 먹고 나자마자 1시간마다 몰려오는 설사와 속 쓰림은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담당 의사는 “죽을 때까지 복용해야 한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식이요법이나 운동요법등 생활습관을 바꾸며 약을 먹지 않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싶다고 했지만 의사의 답변은 평생 복용해야 하며 고지혈약까지 처방해야 한다고 하였다.

변경된 당뇨약을 먹기 시작한 지 1달이 되기도 전 어느 날 새벽 4시쯤 속이 메슥거려 일어나 토하기 시작하는데 창자까지 쏟아지는듯한 통증과 어지러움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 결국 그날부터 당뇨약을 멈추고 진료예약을 하였다. 당뇨를 고치기 전에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으니 약복용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싶다고 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백 명 중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예민함”이라며 약을 끊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민 끝에 스스로 생활습관을 바꿨다. 식단을 관리하고, 운동하고, 수면을 조율하며 모든 약을 끊었다. 6개월 뒤, 내 당화혈색소는 5.7. “조금만 더 노력하면 5.5 아래로 줄일 수 있겠구나!” 진심 어린 벅참이 마음 가득 넘쳤다. 왜냐하면 이미 당뇨약을 끊었던 상황하에서 나온 결과였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처방 연쇄반응’에 휘말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컸다. 약에 적응하라는 말을 들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은 약과 부작용을 버티고 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곁에 남은 약들은 또 다른 고민거리가 됐다. 처방은 받아서 구입은 했지만 혈압과 혈당이 정상으로 돌아와 더 이상 복용하지 않게 된 약들 ― 냉장고 한 칸을 채운 채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 약값도 적은 것이 아니었다.

'의사에게 남은 약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고 질문하였더니 '당분간 보관하라'라고 하였다. 더 이상 먹지 않을 약들을 왜 보관하라고 할까?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병원문을 나섰다.

시니어들에게는 약값 자체도 부담이라 남은 약이 무겁다. 한편, 아무런 대가 없이 폐의약품 수거함에 버려야 한다는 현실도 왠지 허망하다. 폐의약품 처리에 대한 인식과 소통이 잘 안 되어 지금도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약들이 많다. 정부와 지자체는 그 약을 따로 모아 소각한다고 하지만 미세먼지, 유해화학물질, 불완전연소로 인한 환경오염 ― 결국 그 부담은 다시 인간과 생태계로 돌아온다.


병원의 ‘처방 연쇄반응’ 문제, 약국에 쌓여가는 사용하지 않은 약들, 폐의약품 처리의 사회적 비용,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사라지는 ‘삶의 질’… 이 모든 장면이 내 머릿속에 아프게 남는다.


나는 의사 선생님들의 수고, 헌신, 전문성을 눈물겹게 감사히 여긴다. 그럼에도 (아니, 그들이 지치지 않으려면 더욱) 우리 사회가‘약 중심의 의료체계’만이 아니라 ‘삶 중심의 의료’와 ‘본질적 건강’, 그리고 사회적 책임(약 과잉 처방, 폐약 처리 등)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해야 할 때라 여긴다.

살아남는 법, 치유받는 법, 그리고 세상과 다시 맞닿는 길. 저마다 걸어온 환자 모두의 이야기이자, 앞으로 살아갈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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