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인간을 잇는 신성한 터

소도에서 강화 마니산 첨성대와 경주 첨성대를 거쳐 조선왕조 환구단까지

by UI SAM


내가 환구단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이동으로 이사 온 뒤 얼마되지 않아서였다. 산책길에 비범하게 커다란 대문이 있었고 그 대문 안에는 한옥이 매우 큰데 그 당시는 한식음식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대문이 철거되는 걸 보고, 인부에게 물으니 “소공동 환구단 원자리로 이사한다”는 답을 들었다. 언젠가 들었을 법하면서도 전혀 모르겠는 ‘환구단’이 궁금해졌다.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하늘에 제사를 올렸던 천제단이었다. 하지만 일제는 환구단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웨스틴 조선호텔의 전신인 철도조선호텔을 세웠다.
민족의 혼과 얼을 지우려는 식민지 정책의 상징이었다.
지금도 그 파괴된 천제단인 환구단터에 호텔이 남아 여전히 사유재산으로 경영되고 있다.

성화채화 참성단

우리 민족 제천(祭天) 전통의 뿌리를 찾아서

어렸을 적 동네 골목길에 놓인 평상 위에 누우면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별똥별을 보면서 떨어지기 전에 "내가 만석꾼이다"라고 외치면 부자가 된다는 어르신 말씀에 아이들은 누구누구 할 것 없이 한 소리로 외쳐대던 추억이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저 숱한 별들 중 어디에서 왔을까? 나는 종종 우리 민족의 뿌리를 생각하곤 했다. 어머님께서는 늘 청수 올리고 국태민안 귀인상봉 타인 눈에 꽃으로 보이게...... 지극 정성으로 기도를 드리셨다. 북두칠성, 삼신할머니, 조앙신...... 정말 매사에 지극정성이신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우리는 언제부터 하늘을 올려다보았을까?
별을 관찰하고, 제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그 옛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왜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살폈을까? 앙관부찰 하여 천지자연의 이치에 대해 알려주신 분은 현재까지의 문서 기록에는 복희 씨가 처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복희 씨는 어디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이미 그 이전부터 즉 환인 환웅 배달국에서부터 시작된 것일 게다. 소도라는 것이다.

소도, 환인·환웅 시대부터 이어진 신성한 공간

‘소도(蘇塗)’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가?
소도는 단군왕검 이전, 환인과 환웅 시대부터 존재해 온 우리 민족 고유의 신성한 제천(祭天) 공간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백성이 모여 하늘에 제를 올리고, 죄를 지은 자도 이곳에 들어오면 벌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소도는 단순한 제단이 아니라, 하늘과 인간, 공동체의 뜻이 만나는 열린 성소이자, 신정일치(神政一致) 사회의 중심이었다.

지금은 중화인민공화국 영토 내에 있지만 과거에는 우리네 선조들께서 활동하시다 남겨놓으신 흔적들이 고고학에 의해 발견되고 있는데, 요하문명권의 홍산문화 유적에서는 원형 제단, 제천단, 신성구역의 흔적이 발견된다. 이것은 소도의 전통이 한민족의 시원문화와도 직결됨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 중공은 그 문화유적들이 현재 자국의 영토 내에 있으니 자신의 조상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억지를 부린다.

강화 마니산 참성단 표지

강화 마니산 참성단, 소도의 계승과 발전

강화도에 가면 마니산이 있는데 그 위에는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한 뒤, 강화 마니산에 참성단을 쌓아 국가적 제천의례를 행했다는 기록이 『단군세기』, 『수산집』 등 여러 문헌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이 참성단 역시, 환웅 이래로 이어진 소도의 제천 전통을 계승·발전시킨 사례다.

참성단의 구조도 상징적이다.
자연석으로 둥글게 쌓은 하단(하늘)과 네모난 상단(땅)은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고대 동양 우주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담고 있다.

고려·조선시대에도 이곳은 국가 제사의 중심지로,
임시제와 정기제를 비롯해 선도식 초제(醮祭)가 거행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 서적을 찾아보면 여러 곳에 기록이 남아있다.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임을 증명해 놓은 것이다.
조선 후기에는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의 성지로,
근현대에는 개천절의 제천의식(개천대제)과 전국체전 성화 채화의 성지로 이어져 왔다.

강화 마니산(머리산, 마리산) 참성단

첨성대와 환구단, 제천과 천문 관측의 전통을 잇다

신라시대 경주에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천문대, 첨성대(瞻星臺)가 세워졌다.
별의 움직임을 읽고, 계절의 변화를 관찰해 농사와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곳이었다.
첨성대는 단순한 관측소가 아니라, 하늘의 질서를 읽고 백성의 삶을 조율하던 ‘국가의 눈’이었다.

근대에 들어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세운 환구단(圜丘壇)은, 복희 씨 역의 팔괘를 본떠
팔각형 구조이며, ‘환(圜)’이라는 이름으로 둥근 하늘天圓과의 조화를 상징했다.
고종은 이곳에서 천지신명에 고유제를 올리며, 대한제국의 독립과 황제국의 위상을 천명했다.
환구단은 단군의 참성단, 신라의 첨성대가 이어온 제천과 천문 관측의 전통을 근대 국가의식으로 집대성한 공간이었다.

소도에서 환구단까지, 우리 정신의 뿌리

소도는 단순한 제단이 아니라,
하늘과 인간, 백성의 뜻이 만나는 신성한 터였다.
강화도 마니(마리)산 참성단에서 시작된 이 전통은
신라의 첨성대에서 별을 관측하고,
근대의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의 독립을 천명하는 천제의식으로 계승되었다.

오늘날 마니산 참성단은
단군의 숨결, 백성의 염원, 하늘과 땅의 조화가 깃든
민족 제1의 성지, 곧 ‘소도’의 정신을 간직하고 있다.


이 소중한 유산을 제대로 이해하고 복원하는 일은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우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늘과 땅,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그 사유의 현장으로,
다시 한번 걸음을 내디뎌 본다.

환구단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이어서...... 을사乙巳 음력 5월 5일 端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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