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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울 Nov 28. 2023

무표정한 행복

15세의 철없던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집은 왜 이렇게 평범할까. 왜 매일매일이 별난 일 없이 재미없게 흘러가는 걸까. 다른 집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건 사고가 많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흘러넘치던데.


아버지께서는 대기업에서 회사원으로 오랜 기간 동안 일하셨고, 어머니는 가정주부로 나와 오빠의 곁에서 늘 살뜰히 케어해 주셨다. 그리고 나와 오빠는 타고난 소심 DNA 덕에 학교에서 ‘적당한 모범생’으로 지냈다. 아, 물론 공부를 무진장 잘했다는 뜻은 아니다. 선생님들 눈에 크게 띄지 않는 여느 학생들처럼 매우 평범하게 학생시절을 보냈다는 말이다. 나는 그런 삶이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로부터 15년 후, 30세가 되어서야 나는 깨닫는다. ‘무표정한 행복’을 지키기 위해 부모님이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사셨는지. 오빠와 내 앞에서 다투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화를 속으로 꾹 삭이던 순간들. 내 아들 딸을 부족함 없이 키우기 위해, 본인에게는 당연히 아껴왔던 것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셨던 그 마음들. 그러한 순간과 마음이 하나 둘 모여 나에게는 평범한 하루하루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그 평범한 일상이 내겐 ‘무표정한 행복’으로 새겨졌다는 것을.


어머니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시며, 조부모님 두 분이 돈 문제로 다투는 것을 자주 보셨다고 했다. 그때의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집에 들어왔을 때 두 분이 싸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불안에 놓인 하루하루가 지겨웠다고.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는 이 불안을 물려주지 않겠노라 다짐하셨던 것 같다. 부모님이 내 앞에서 크게 다투신 걸 내가 목도한 경험은 한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니까. 내가 다짐한 것을 정말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새삼 부모님이 존경스럽다.


 아버지는 월급쟁이로, 어머니는 주부로 거의 평생을 사셨다. 외벌이였던 아버지 월급으로 어머니는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 돈을 모아 오신 것이다. 덕분에 두 분은 지금껏 큰 부족함 없이 나와 오빠를 키우셨지만, 정작 두 분 본인에게 투자하는 방법은 잘 모르시는 것 같다. 우리 혹은 조카에게는 기꺼이 돈을 쓰시지만, 본인의 것을 구매하실 때는 수십 번을 망설이신다. 그리고는 ‘생각해 보니 필요 없는 것 같다’는 말로 고민을 갈무리한다. 때로는 그런 모습이 답답하지만, 또 그런 부모님이 계셨기에 내가 또래의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어린 시절의 난 행복이 ‘나를 벅차게 만드는 특별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소풍이나 여행을 가는 것처럼 새로운 경험이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기적 같은 순간들. 그런 게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내가 경험하는 많은 것들이, 말 그대로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 생각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행복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앞서 말한 특별한 경험을 통해 짓는 함박웃음의 모습일 것이다. 입꼬리를 올리고 환하게 웃는 그런 모습. 하지만 실은 더 많은 행복이 우리 곁에 존재한다. 무표정하게,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그리고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 불쑥,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무심코 올려다본 맑게 갠 하늘이 예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훅 불어오는 꽃내음이 향기로워서, 가족들과 tv를 보다 함께 웃는 순간이 즐거워서, 지인들과 소소한 근황을 이야기하며 먹는 커피와 디저트가 너무 맛있어서. 새삼 그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해진다.


보통 ‘무표정한 행복’은 잃어버린 후, 그 빈자리는 더 크게 느껴진다. 때때로 빈자리는 후회로 채워진다. 곁에 늘 함께하던 누군가의 부재가 그러하듯이. 그러니 그 자리가 후회로 가득 채워지기 전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만끽해야겠다. 어쩌면 나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행복의 일부가 될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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