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툴다. 어려서부터 인정 욕구가 강했던 나는 인색한 부모님의 표현이 섭섭했다. 무언가 잘 해냈을 때 담뿍 칭찬을 받고 싶었지만, 두 분은 “잘했어”라는 가벼운 칭찬도 허투루 하지 않으셨다. 혹시 내가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아니어서 내게 표현을 안 해주시는 걸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공부를 더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린 내가 느끼기에 부모님이 나를 인정하고 독려해 줬던 건 좋은 성적을 받아왔을 때였으니까. 고3과 재수생 시절을 지나 나는 서울 하위권 대학에 합격했다. 하지만 명문대에 진학하길 바랐던 부모님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명문대에 가고 싶었던 건 나의 바람이었을까, 아니면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만들어낸 꿈이었을까?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그 때의 나는 대학을 향한 뚜렷한 목표 의식이 없었으니까.
나의 대학이 결정되었을 무렵, 모임에서 다녀오신 부모님은 늘상 “이번에 00이가 명문대에 들어갔다더라”는 말을 전했다. 두 분은 별 의미없이 말씀하셨겠지만 반복해서 듣던 내게는 그 말이 꼭 나를 향한 질책처럼 들렸다. 내가 민감해서 그렇다며 마음을 애써 눌러내던 어느 날, 아빠가 외출을 하고 들어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00이 딸이 고려대에 합격했다고 자랑하더라. 그 앞에서 나는 할 말이 없었어.” 한층 예민해있던 나는 그 말에 “내 대학이 창피하냐!”며 아빠에게 소리쳤다. 아빠는 “나도 자랑할 게 있었으면 했겠지.”라는 말로 되받아쳤다. 그 말에 나는 온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3일 내내 방에 틀어박혀 계속 울기만 했다. 물론 사람의 기억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왜곡된다. 때문에 그 상황을 나에게만 유리하게 기억하는 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말은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나를 꽤 오랜 시간 동안 울렸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을 떠올리면 눈물을 펑펑 흘릴 정도로.
대학생이 된 후에도 나는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종종 좌절했다. 당시 오랜만에 만난 친척언니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니 언니가 말했다. “이모가 엄마랑 만나면 네 자랑 엄청 많이 한다던데, 몰랐어?” 내 앞에서는 좀처럼 티를 내지 않는 엄마라, 나는 정말 몰랐다. 부모님이 나를 얼마나 좋은 딸로 생각하고 있는 지. 나에게도 표현을 해줬다면 참 좋았을텐데, 한편으로는 원망스럽기도 했다. 동시에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배웠다.
한편 친척언니의 말은 나의 생각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내가 그들에게 부족한 딸이었기 때문에 표현을 아낀 게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표현했던 게 내게는 부족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부모님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