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열기가 한 템포 식은 듯 보이지만, 한참 MBTI가 대화 주제로 핫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땐 너도 나도 "MBTI가 뭐냐"고 묻곤 했다.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주로 이렇게 대답했다. "어떻게 사람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눠. 나는 MBTI 안 믿어." 마음 한 구석에서 느껴지는 묘한 불편함의 정체를 찾지 못한 채, 그저 나는 이 유행에 편승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러다 ‘MBTI가 타인을 이해하는 좋은 도구가 된다’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조금씩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MBTI 영상을 단 한번 클릭했을 뿐인데, 유튜브 알고리즘은 끝없이 나를 MBTI 콘텐츠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유 모를 불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기많은 I들의 특징, E가 I를 좋아하는 이유’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조화를 다룬 콘텐츠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재생 수를 끌어내기 위해 일부러 P와 J, 그리고 F와 T처럼 양극단의 성향을 까내리는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점차 다른 성향이 어떻게 피해를 끼치는 지 나열하며 자신의 성향을 옹호하는 집단성 댓글들이 많아졌다. 심지어는 T 성향을 불편해하는 ‘너 T발 C야?’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나 또한 MBTI에 꽤 몰입해 있었기에 무엇이 문제인 지 잘 알지 못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과 함께하는 오프라인 독서 모임을 가지게 됐다. 우리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어김없이 서로의 MBTI를 공유하기 시작했고, 나는 ENFP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한 멤버 분이 “어, 정화님 E예요? I 같아 보이는데. 보통 ENFP는 츄처럼 엄청 밝은 댕댕이 성격이라던데 아닌가봐요.”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그냥 짤막하게 답하고 넘기면 되었을텐데, 그 때의 나는 왜인지 내가 E인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 같아 열심히 긴 사족을 덧붙였다. 아마도 나는 활발하고 사교성 좋은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마케팅이라는 직군에 잘 어울린다는 걸 어필하고 싶었나 보다.
독서 모임에 다녀오고 나서야 비로소 ‘MBTI가 불편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MBTI가 함부로 나를, 그리고 남을 판단하게 되는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친오빠가 현실적인 조언을 덧붙일 때면 농담처럼 “저기요, 님 T세요?”라고 답변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이 얄팍한 잣대로 재단했을까. 그리고 나는 얼마나 많이 사람들에 의해 재단 되었을까. 이 모임을 계기로 나는 MBTI를 단순한 시각으로 소비하지 않고, 서서히 멀리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MBTI를 놓아주기로 결심한 계기는 새언니와의 대화였다. “내가 보기에 너는, P가 아니라 J인 것 같은데?” 가까이에서 나를 겪어 온 언니의 말은, 스스로를 ENFP라고 굳게 믿었던 내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조금이라도 계획적인 면모(J)를 보이거나, 혼자만의 시간(I)이 필요할 때면 ‘사실 나는 다른 MBTI였는데 ENFP의 면모를 갖고 싶었던건가?’ 의문이 들곤 했다. 그리고 수많은 물음표 끝에 마침내 ‘MBTI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 그냥 나답게 살자’고 결론을 지었다. 사람은 그때 그때 달라진다. 어떤 대상을 대하느냐에 따라, 혹은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느냐에 따라. 그런 존재를 어떤 틀에 끼워 맞추려니, 그로 인해 발견하지 못할 다양한 면면이 너무 아까워졌다. 그러니 이제는 MBTI를 놓아줘야겠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남들이 그들로서 온전히 이해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