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파란 대문집 사람들

by 서은



주인집 아줌마는 늘 목소리가 컸다.
마당 수돗물이 덜 잠겨 졸졸 거리며 나올 때나
마당 한편에 있던 평상에
전날밤 영희아줌마가 먹었을만한
땅콩 부스러기라도 있으면
큰 소리로 혼자 악다구니를 썼다.

"아휴!!! 징글징글해!! 지들 집 아니라고
개판을 쳐놨네! 월세만 내면 다야?
사람답게 살아야지!"

아줌마가 소리를 지르며 마당에 있는 날은
곧 우리 방에도 와 나머지 화를 쏟아부을까 봐
겁이 나 이불속에 누워 자는 척을 했다.

희정이 아빠는 그럴 때마다 곧 밖으로 나와
평상을 치우고 수도꼭지 부속이 닳았나
확인해 본다는 말도 하며
주인아주머니를 흡족하게 해서
희정이 아빠가 집에 있는 날은
한결 조용하게 보낼 수 있었다.

눕히면 스르르 눈을 감고
세우면 또르르 눈을 뜨는 희정이 인형도,
36가지 색이 모두 들어 있는
크레파스도 희정이 아빠가
사 온 거라 했다. 내 인형도, 내 크레파스도
아닌데 난 희정이 아빠가 좋았다.

주인아줌마는 항상 변소를 늦게
치워 주신다.
칼잡이 아저씨가 늘 먼저
똥 좀 퍼달라고 하면
아줌마는 "차가 와야 치우지" 하면서도
딸랑딸랑 변소 치우는 아저씨들의
종소리를 몇 번씩이나 못 들은 척하다가
못내 치워주셨다.

엉덩이에 똥이 묻을까 무서워
가끔 일요일엔 영희언니랑 학교까지
똥을 싸러 갔다. 학교 화장실에는
늘 온갖 낙서가 가득했고
누구랑 누구랑 좋아한다는
낙서가 새로 생기는 날엔
여자아이들은 책상에 엎드려
울었고 남자애들이 짓궂게 놀리기도 했다.

난 내 이름이 화장실에 써 붙어 있는 걸
상상해 보지만 그건 절대 슬픈 일은 아닐 거 같다.

친구들에게 질투와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건
기쁜 일이다. 내 이름이 화장실 벽에
쓰이는 날엔 나도 우는 척을 하며
친구들의 토닥임을 받겠다 상상해 본다.

영희언니랑 손을 잡고
학교에서 고불고불 좁은 골목길을 지난다.
달고나 뽑기 냄새가 솔솔 풍기면
걸음을 재촉할 때다.
떡볶이, 달고나를 내놓고 팔던
몽실아줌마 난전을 지나면
바로 옆이 쌀집이다.

쌀집 아줌마 눈에 띄면
"너네 엄마 집에 있냐?"
또 창피를 줄까 봐 고개를 반대로
돌린 채 빠르게 지나간다.
곧 이어진 육교를 넘어서
부평역 앞 짜장면집이 목적지이다.

영희언니는 배달하고 남은 신문을
몰래 빼돌려 몇 집에 따로
신문을 넣어주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빼돌린 신문으로
신문값을 받는 날에 가끔
짜장면을 사주었다.

나는 괜히 나까지 도둑이 되는 것 같아
짜장면을 먹는 동안에도 누가 뒷덜미를
잡아챌까 봐 젓가락을 놓지 못한 채
긴장을 했다.

영희언니가 함께 신문을 돌리자고
꼬드기지만,
신문 보급소 총무에게 맞았다며
한쪽 뺨이 벌게져
찬물로 식혀대던
영희언니가 생각나
급하게 도리질 쳤다.

친구들에게 내 이름이 불려지는 것,
주인아주머니의 큰 목소리에서
나를 지켜줄 어른이 있는 것,
당당히 변소를 치워달라고 할 수 있는
여윳돈이 있는 것,

나는 그런 것들에 목말라

자꾸만 쪼그라들었고

기어이 그림자 속에 숨어들어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아이가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