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마녀와 세라 사이에서

by 서은

이상하리 만치 조용한 아이였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엑스트라 같은..

있어도 없어도 되는

주의 깊게 보아야 보이는 아이..


입을 꾹 다물고 아빠가 할부로 들여놓아준

백 권짜리 어린이 전집책을

읽고 읽고 또 읽어 대기만 했다.


그중에서 유독 손이 가는 책은

"마녀의 관"이었다.

책장을 열 때마다
서늘하고 무거운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아
늘 어깨가 먼저 굳었다.

무서운데, 이상하게 또 읽고 싶고.
읽고 나면 더 무서워지는
그런 책이었다.

사람의 혼을 조종해 빼가는 마녀.
그게 무서우면서도
어쩐지 한 번쯤은
나도 그런 마녀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누구도 모르게
주인아줌마의 혼을
조용히 쏙 빼가버리면 어떨까.

말을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껍데기 인형처럼 만들어버리는 상상을

종종 하곤 했다.

'나도 마녀의 기운이 있을지도 몰라!

무서워서 읽기 싫은데 자꾸만 읽고 싶어 지잖아. 내 안에 마녀가 진짜 튀어나오면 어쩌지? '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다신 읽지 않겠다고 머리 옆에 밀어내고

등을 돌려 보지만

또 자꾸 머리뒤 책이 날 홀리는 것 같아

뒤통수가 따가워진다.



"내일은 소공녀를 읽을 거야.
세라처럼 부잣집 양녀가 돼보고 싶어.”

연탄가스 냄새나는 방..
주인아주머니의 잔소리에 시달리며,

엄마 없이 불안하던 어느 밤.
세라가 입던 레이스 드레스와
따뜻한 난로가 있는 방을 떠올렸다.

“나도 세라처럼 예쁜 양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돈도 몰래 모아 엄마에게 줄 수 있을 텐데..

언니와 동생에게도 멋진 옷과 가방을 사줄 거야!
착한 아이라고 칭찬도 받을 수도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금방이라도 누군가 찾아와

내 손을 잡아 줄 거 같아

가슴이 콩당 거리기도 했다.



사랑받고 싶은 갈망에 목이 탔고

사랑받고 싶어 애가 탔다.

난 책 속 세계를 두려워하면서도

또 다른 세계를 꿈꾸는 아이였다.

마녀가 될까 봐 떨면서도

세라가 되고 싶어 웃었다.


두려움과 희망이 교차하는 두 감정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책 속 세계를 붙잡고 현실을 견디던 그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 그 어린 나를 안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