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외상은 안 돼!"
총채로 과자 봉지를 털며
가게 아저씨가 매섭게 소리를 질렀다.
과자 봉지를 때리는 총채질이 마치
내 등짝을 내리치는 것 같아
무서워져서 인사도 못 하고 뛰어나왔다.
가게 앞 만화방 골목에 숨어 있다
빈손으로 나오는 나를 보고
언니는 또 짜증이 나는지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버린다.
씩씩거리며 언니는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하고
나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 마냥
풀이 죽어 멀찍이 떨어져 언니를 좇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언니의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이번엔 눈물이 아닌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렸고,
덩달아 동생도 앙앙 울기 시작했다.
나는 내 잘못이 아닌데
나 때문에 외상 라면을 못 가져와서
우는 것 같은 언니가 섭섭하면서도,
가게 아저씨께 인사를 크게 하고 들어갔으면
외상을 주셨을까, 곱씹어 본다.
계속된 언니의 짜증 섞인 울음,
동생의 앙앙거리는 울음소리에
옆방 희정이 엄마가 들어와
멀뚱히 울지 않고 앉아 있는 내게
싸웠냐고 묻다가 금방 혀를 차고 나가
양파라면 두 개를 가져오셨다.
이왕이면 삼양라면 주시지…
난 양파 싫은데…
아마 희정이도, 희정이 동생도 잘 안 먹는
양파라면을 주신 것 같아
그 와중에도 심술이 났다.
언제 울었냐 하듯 언니는 희정이 엄마가 나가자마자
곤로에 불을 붙이고 라면을 끓여주었다.
배가 고파도 양파라면은 별로다.
양파를 잘게 썰어놓은
양파 건더기가 면발에 붙지 않게
국물에 넣었다 뺐다 흔들며 야무지게 먹었다.
그날 밤에
엄마가 집에 왔다.
엄마가 온 게 좋지만
언제 또 나갈까 궁금하기만 한 나는
엄마의 기색만 살피고,
언니는 엄마를 한번 쏘아보고 엎드려
빌려온 전과를 보며 숙제에 집중했다.
늘 엄마가 오면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안 놓던 동생도
마치 낯선 손님을 보는 것 마냥 부끄러워한다.
새근새근
언니와 동생의 숨소리를 들으며
내일 미술 시간 준비물인 벼루와 먹 이야기를
엄마에게 꺼낼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하는데…
엉엉엉—
엄마가 운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이 마냥 엉엉 운다.
엄마의 울음소리에
온몸이 굳었다.
가슴이 콩당콩당 거리고
자꾸만 무서워서
몸이 떨렸다.
안 자고 있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언니 쪽으로 살금살금
몸을 돌려본다.
언니…
언니가 울고 있었다.
눈을 꼭 감은 채
훌쩍훌쩍
언니가 운다.
유난히 길고 무서운 밤이었지만
엄마도, 언니도, 나도
그 누구도 지금껏
그날 이야기만큼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 밤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이유는
잊어서가 아니다.
서로의 바닥을 목격한 수치심도 아닐 것이다.
어쩌면 말로 꺼내는 순간,
그날의 냉기와 고통이
내 삶에 스며들까 두려워서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외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가끔 마음이 허기진 밤이면
문득, 가게 아저씨의
매서운 총채질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러면 나는 미친 듯이
그때의 단칸방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럴수만 있다면,
울고 있는 언니와 동생을 끌어안아주고 싶다.
괜찮다는 말 대신,
따뜻한 온기로
오래오래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