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슬픔의 순서

by 서은

“정신 나간 X이야!! 아휴! 누나도 아니지! 나쁜 X.”

“애들은 어쩐다니…

엄마 언제 나갔어?

언제 들어온다 했어? 미친 X.”

이른 아침, 갑자기 들이닥친 이모와 외삼촌이

엄마의 행방을 다그쳐 물었다.

언제였더라?

그제인가? 그끄제인가?

손가락을 꼽아보다가

그 질문이 우리를 책망하는 것처럼 들려

우물쭈물 눈을 피했다.


동생은 이모, 외삼촌이

백 원짜리라도 쥐어 주고 갈까 싶어

몸을 베베 꼬며

간질간질한 눈웃음을 보냈다.


언니는 뭐가 그리 분한지

유난히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주먹을 꽉 쥔 채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떨궜다.


나는 취조하듯 몰아붙이는 질문들도 불편했지만,

엄마의 일탈이 속상해서인지

아니면 어른의 흔적 없이 방치된

조카들이 안쓰러워서인지,

급기야 울음이 터져버린

이모의 모습이 더 거북했다.


“매형은 그 더운 데서 개고생을 하는데!!! 에잇.”


화가 잔뜩 난 삼촌은

애꿎은 베개를 발로 차고 나갔다.


이모는 그제야 우리의 끼니를 묻고는

서둘러 라면 몇 봉지를 사 오라 시켰다.


양은 냄비에 물이 끓는 동안에도

이모의 입은 쉬지 않았다.

엄마를 향한 원망 섞인 흉이 쏟아지다가,

또 금세 북받치는지

훌쩍이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미운 건지

우리가 불쌍한 건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보글보글 끓는 라면 국물 속에

뒤섞였다.


이모의 입에서 쏟아지는

엄마를 향한 날카로운 말들에

엄마가 창피하고 원망스러웠다.

마치

“너희 집은 왜 이 모양이니?”

추궁받는 것 같았다.

그것이 나 때문인 것만 같아

더 부끄러워졌다.


언니의 눈물도

동생의 어설픈 웃음도

그리고 엄마가 없다는 사실도,

모두 내 몫인 양

창피하고 서러웠다.


도시락을 못 가져가는 날에도

언니는 아침마다 마당에 나가

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그리고는

어제 입고 벗어두었던 옷을 다시 입었다.

소매단이 팔목 위로

반뼘쯤 올라간,

엄마가 떠준

꽈배기 무늬의 자주색 스웨터였다.

언니는 그 옷을 입고

새침하게 학교에 갔다.


이상한 일이다.

열 살 남짓 어린아이였을 뿐인데도

덜 마른 머리를 꽁꽁 묶고,

같은 반 친구를 골목에서

만날까 싶어

대문 밖에 머리를 빼꼼 내밀다

마치 파란 대문집에서 나온 사람이

아닌 듯

종종걸음으로 가는

언니의 뒷모습이

난 아렸다.

슬펐다.


오전반 수업인 내가 들고 간 가방을 받아

오후반 수업에 가려고,

내가 늦을까 조바심 내며

기다릴 동생이 마음 아파

수업이 끝나면

약속 장소인

개미문방구 골목길까지

뛰었다.


철이 빨리 들어 슬펐던 것인지,

아니면 슬퍼서

철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여전히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개미문방구 골목길까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게 뛰었던

그 열한 살의 내가 있었기에

오늘의 평온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언니의 젖은 머리칼이

마르기도 전에

교문을 향해야 했던

그 서러운 등굣길을

지금도 가끔 떠올린다.


슬픔에도 순서가 있다면,

이제는 행복해질 차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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