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나간 X이야!! 아휴! 누나도 아니지! 나쁜 X.”
“애들은 어쩐다니…
엄마 언제 나갔어?
언제 들어온다 했어? 미친 X.”
이른 아침, 갑자기 들이닥친 이모와 외삼촌이
엄마의 행방을 다그쳐 물었다.
언제였더라?
그제인가? 그끄제인가?
손가락을 꼽아보다가
그 질문이 우리를 책망하는 것처럼 들려
우물쭈물 눈을 피했다.
동생은 이모, 외삼촌이
백 원짜리라도 쥐어 주고 갈까 싶어
몸을 베베 꼬며
간질간질한 눈웃음을 보냈다.
언니는 뭐가 그리 분한지
유난히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주먹을 꽉 쥔 채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떨궜다.
나는 취조하듯 몰아붙이는 질문들도 불편했지만,
엄마의 일탈이 속상해서인지
아니면 어른의 흔적 없이 방치된
조카들이 안쓰러워서인지,
급기야 울음이 터져버린
이모의 모습이 더 거북했다.
“매형은 그 더운 데서 개고생을 하는데!!! 에잇.”
화가 잔뜩 난 삼촌은
애꿎은 베개를 발로 차고 나갔다.
이모는 그제야 우리의 끼니를 묻고는
서둘러 라면 몇 봉지를 사 오라 시켰다.
양은 냄비에 물이 끓는 동안에도
이모의 입은 쉬지 않았다.
엄마를 향한 원망 섞인 흉이 쏟아지다가,
또 금세 북받치는지
훌쩍이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미운 건지
우리가 불쌍한 건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보글보글 끓는 라면 국물 속에
뒤섞였다.
이모의 입에서 쏟아지는
엄마를 향한 날카로운 말들에
엄마가 창피하고 원망스러웠다.
마치
“너희 집은 왜 이 모양이니?”
추궁받는 것 같았다.
그것이 나 때문인 것만 같아
더 부끄러워졌다.
언니의 눈물도
동생의 어설픈 웃음도
그리고 엄마가 없다는 사실도,
모두 내 몫인 양
창피하고 서러웠다.
도시락을 못 가져가는 날에도
언니는 아침마다 마당에 나가
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그리고는
어제 입고 벗어두었던 옷을 다시 입었다.
소매단이 팔목 위로
반뼘쯤 올라간,
엄마가 떠준
꽈배기 무늬의 자주색 스웨터였다.
언니는 그 옷을 입고
새침하게 학교에 갔다.
이상한 일이다.
열 살 남짓 어린아이였을 뿐인데도
덜 마른 머리를 꽁꽁 묶고,
같은 반 친구를 골목에서
만날까 싶어
대문 밖에 머리를 빼꼼 내밀다
마치 파란 대문집에서 나온 사람이
아닌 듯
종종걸음으로 가는
언니의 뒷모습이
난 아렸다.
슬펐다.
오전반 수업인 내가 들고 간 가방을 받아
오후반 수업에 가려고,
내가 늦을까 조바심 내며
기다릴 동생이 마음 아파
수업이 끝나면
약속 장소인
개미문방구 골목길까지
뛰었다.
철이 빨리 들어 슬펐던 것인지,
아니면 슬퍼서
철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여전히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개미문방구 골목길까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게 뛰었던
그 열한 살의 내가 있었기에
오늘의 평온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언니의 젖은 머리칼이
마르기도 전에
교문을 향해야 했던
그 서러운 등굣길을
지금도 가끔 떠올린다.
슬픔에도 순서가 있다면,
이제는 행복해질 차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