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번들거리는 입장권

by 서은

새 학기가 시작되며 수업이 끝나면

겨우내 묵혀있던 복도바닥에

광을 내느라

교실마다 시끄러웠다.

시멘트도 대리석도 아닌

복도바닥을 가르는 금색선은

칸마다 당번이 있었다.

반짝반짝 빛을 튕겨내는 칸도 있었고,
유독 미끄럼질에 공을 들여

누군가의 넘어짐을

기다리는 익살맞은 칸도 있었으며,
대충 물만 칠해 놓은 것 같은 칙칙한 칸도 있었다.
모두 주인의 얼굴처럼 달랐다.


'면직물을 접어 바느질한 걸레'라는

자세한 설명이 적힌 준비물을 받아 적었지만

걸레 따위로 쓸만한 헌 옷 따위는

분명 집에 없을 거란 걸 알았다.

학교 앞 문방구에 싸구려 합성섬유의 걸레를

팔고 있었지만 그조차 준비하지 못했다.

걸레, 물체주머니도 새 학기 준비물인데

내일 온다던 엄마는 삼일이 지나도

오지 않고 있었다.

방과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은

제발 엄마가 집에 있기를

그래서 내일은 내 책상 위에도

걸레와 물체주머니가 놓여있는 풍경을

간절히 마음속에 그렸다.


교실에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선생님 기분이 좋아 보이는지,

괜스레 화가 난 얼굴인지 안색을 살피고

준비물검사 시간이

어떻게 지나갈는지 마른침을 삼켰다.


결국 책상 위에 준비물을

아무것도 꺼내놓지 못한 몇 명의

아이들과 함께 변소청소를 하기 위해 남았다.


"내일도 난 준비물 못 가져와!"


솔직하게 얘기하는 친구가 대단해 보여

울컥과 벅참이 가슴을 꽉 채웠지만

난 그 아이와 같은 처지가 되는 건 싫어서


"까먹고 안 가져왔어..."


믿지 못할 거짓말을

웅얼대며 하고 말았다.


내 몫으로 남겨진 변소바닥은

유난히 더 더럽고 축축한 거 같았다.

친구의 "내일도 못 가져와"하는

당당한 외침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난 그 아이처럼 고개를 들 용기가 없었다.


대문과 우리 방은 다른 방보다 더 멀찍이

떨어져 있음에도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엄마가 온 걸 알았다.

팽팽한 빨랫줄에 널린 빨래를 보기 전부터

콩나물 국 냄새를 맡기 전부터도

엄마가 집에 있는 걸 알아챘다.

내일 온다던 약속을 어긴 엄마에게

원망보다 안도가 밀려들어

조잘조잘 엄마 없는 설움에

당한 학교에서의 일을 떠벌리고

천 원짜리 지폐를 받아 들고 문방구로 달려갔다.


왁스를 묻혀도 겉돌기만 할 게 뻔한,

번들거리는 싸구려 합성섬유 걸레였지만

내 손에 쥐어진

그 감촉이 생경하면서도 벅찼다.

내일은 드디어 책상 위에 무언가를 당당히

꺼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게 걸레는 청소도구가 아니라,

보통의 아이들 곁에 당당히 앉아도 되는

허락이었다.


옆자리 친구의 흰 러닝셔츠 걸레는

묵직하게 왁스를 머금고

지나가는 자리마다 깊은 광택을 남겼다.

내 손에 쥐어진 합성섬유 걸레는

바닥 위를 힘없이 미끄러지며

삐걱거리는 소리만 내고

왁스의 번들거림만 얼룩으로 남겼다.


"내가 분명히 집에서 쓰는 헌 옷으로 만든 면걸레

가져오라고 했지?""

선생님이 꾸지람을 하셨지만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안 가져온 사람의 명단에서

내 이름이 지워졌다는 게 으쓱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방과 후, 가방을 메고 복도를 지나는데

어제의 나처럼

변소 청소를 하러 갈 차례를 기다리는

남겨진 아이들이 보였다.


"나는 이제 너희랑 달라!'


다시 그 아이들과 함께 한 무리로 엮일까 싶어

고개를 돌린 채 멀찍이 떨어져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변소청소보다 더 싫었던 건

교실 안 친구들에게 포함되지 않고 변소무리에

섞여있다는 원치 않은 특별한 구분이었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아무도 부르지 않는 아이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