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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마음아 Aug 30. 2024

안 좋은 일은 연속으로 일어나

하인리히 법칙처럼 완벽한 것도 없다.

삶을 살아가면서 좋은 일도 있지만 안 좋은 일이 생겨나면 사람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도망치거나 투쟁하거나. 나는 늘 삶으로 도망쳤고 때에 맞지 않는 투쟁을 하며 살았다.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있으니 삶을 가만히 들여다볼 만큼의 여유라는 게 없었다. 뜬금없이 화내고 속절없이 분노했다. 그래서일까? 내 삶이 무너지기 시작한 순간이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어쩌면 처음부터 나는 이 세상과 싸우러 나온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타인들을 괴롭히면서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타인과 싸워놓고 돌아오면 나는 더 괴로웠다. 잘했다며 큰소리칠 때는 언제고 속이 썩어 들어가는 것처럼 마음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모든 싸움 끝에 내가 있었다. 괴상망측하고 이기적인 나. 그런 나에게 삶은 뭔가를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한번 그렇게 네 멋대로 굴어봐!라는 듯이 삶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혼과 질병은 동시에 벌어졌다. 아니 남편이 낸 사고가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대형사고와 동시에 삶이 피폐해졌고 둘을 갈라놓으려는 듯이 질병과 이혼도 겹쳐왔다. 어디까지가 내리막 길인지 알 수 없었다. 꼭 마치 나를 묻어버리기로 작정한 듯 삶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퍼부어댔다. 그리고 그렇게 이혼을 했다. 나는 쉴 공간이 필요했다. 아이를 볼 수 있는 근처의 허름한 집을 구했고. 세탁기, 소형냉장고, 가스레인지... 책 그것이 세간살이의 전부였다. 밥 먹을 밥상이란 것도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더, 더 많은 물건들이 필요했을지도 모르지만 전부 귀찮고 부질없어 보였다. 


충분하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대신 책이 있었다. 몸의 허기보다 마음의 허기가 더 고팠던 나였기에 뭐든 읽고 쓰기만 하면 편안해졌다. 나는 왜 여기까지 왔는지 알고 싶었다. 심리학책들을 다수 읽으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그렇게 조금은 정신을 차리게 되었을 무렵 이제 내가 치를 행사는 다 끝난 것인가? 싶었을 때 또 다른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난리였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도 국지성 소나기가 많이 내렸다. 마당 있는 오래된 가옥이지만 나에겐 더없이 편안한 쉼터였다. 그날도 나는 대충 끼니를 때우고 자리에 누웠다. 잠시 잠이 들었을까 싶었는데 뭔가 축축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떴을 땐 이미 발목까지 물이 차있었다. 순간 멘붕이 왔다. 뭐지?

출렁출렁 물결이 일며 집 전체가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가전제품은 없지만 전기선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노트북과 가방,내 영혼을 일으키던 책들이 모두 둥둥 떠다녔다. 


참 어이없었다. 망연자실이란 것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정말 죽으라는 건가?  그렇게 현관문을 열자 폭포수처럼 집안에 있던 물들이 마당에 쏟아졌다. 집 밖에 있는 난간에 앉아 물끄러미 그 광경을 바라다보았다. 사람이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한 낱 인간이란 이렇게 나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였구나! 뭘 대단히 아는척해도 이 대자연의 섭리 안에서 만큼은 개미만 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알았다. 살면서 큰 사고를 겪기 전 미리 잔잔한 사고들은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것을 그렇게 나에게 작은 힌트들을 보내왔었고 대형 사고가 나던 날도 미리 나에게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음을...


심리학에서는 이를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불렀다.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 또는 1:29:300의 법칙은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반드시 나타남을 뜻하는 통계적 법칙이다. 유사한 법칙을 제창한 버드, 로프터스 및 애덤스의 법칙을 묶어 '사고의 삼각형(accident triangle)' 또는 '재해 연속성 이론'이라고도 한다.  다시 말하면 큰 재해는 항상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남편의 대형사고 전 내 차에 갑작스레 뛰어든 강아지사고가 있었다.

암이란 질병이 있을 때 노루가 내 차를 향해 돌진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리고 이혼은... 전남편이 개를 쫓아내다가 버스에 치여 죽는 사고가 있었다.

나는 그 개를 내손으로 들고 땅에 묻어주었다. 


그렇게 미리 우리의 미래를 준비시키는 것이 징조이자 하인리히 법칙의 원리였다.

아주 정확하고 완전무결한 법칙인 것이다.


요즘 나는 일상을 잘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마음의 여유를 되찾은 이후로 얻은 작인 지혜들이다.

이제 급할 것도 마음 졸일 것도 없기에 천천히 느긋하게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45년 만에 얻은 휴식이다.

천천히 걸어도 됐을 시간들인데 무엇을 쫓아 허겁지겁 달렸는지 모를 일이다.


삶이 내게 가르쳐준 귀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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