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어 마음 졸이던 때와는 다르게 막상 브런치 작가 승인이 나자 여유를 부립니다.
마치 화장실 들어갈 때의 마음과 나올 때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정도 뱃장과 여유라는 게 들었던 모양입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 하나와 그저 어느 정도는 쉽게 쓰고 싶은 마음 하나가 양면처럼 존재합니다. 전업 작가라면 글쓰기에만 매진해도 될 일이지만 일상을 살아가면서 시간을 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다시 글쓰기로 돌아오는 이유는 '좋아서'라는 이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세상사에 치여 육아라는 기쁘고도 어려운 명제를 하나하나 풀어 가면서 놓지 않은 것 하나는 글쓰기였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다시 정돈하고 자리에 앉아 자판을 두드려 봅니다.
브런치 작가가 되면 이력서에 글 한 줄 넣기 좋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디 가나 이름표 뒤에 따라다니는 나의 이력서에 글 한 줄 넣으려고 글을 쓰나 싶기도 하지만 현실은 다른 모양입니다.
과감하게 이력을 채우려는 욕심을 버린 지 오래라지만 솔깃한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하지만 저에게 글쓰기는 숨을 쉬는 일이었고 삶을 담는 행위였습니다. 다 전할 수 없는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를, 쏟아도 쏟아낼 수 없는 울음을 한 아름 들고 와서 폭포처럼 쏟아내야지만 잠이 들 수 있었던 최선의 삶이었습니다.
그렇게 7년을 독자 없는 글쓰기를 하였습니다. 그 글에 대한 유일한 독자는 나 자신이었습니다. 써도 써도 지워지지 않던 고된 흔적들, 마감이 언제인지도 모를 하염없는 글쓰기의 시간들, 목적 없는 글쓰기의 끝이 바로 브런치 작가라는 도전을 낳았습니다.
숱한 자기 계발서들에 적힌 목적과 목표가 있는 삶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적어 내려간 세월 중에 하나의 꿈이 피어오릅니다. 바로 '작가'라는 꿈이었습니다. 쓰레기 같았던 글들이 보석으로 재탄생되는 꿈을 꿉니다.
정말 시간이 스승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어떤 것을 오래 한 사람들에게는 길이 나고 곧 능통해진다고 합니다.
저의 글쓰기가 그렇습니다. 하나의 길을 만들었고 능통해지기 위해 다음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늘 이것이 한계인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인가?로 규정짓던 하루가 새로운 시간의 발견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계에 다다른 곳에서 다른 한계를 설정하여 전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단 하나의 독자라도 괜찮습니다.
무너진 곳에서 좌절한 곳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품는다면 저도 누군가에게 자그마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도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글을 씁니다.
당신이 희망이 될 수 있게
아니 당신이 바로 희망이 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