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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마음아 Aug 25. 2024

내가 무너지지 않으면 삶은 계속된다.

오늘의 브런치,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아픔도 결국엔 이겨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브런치 하시죠^^

잘 오셨습니다. 

제가 오늘 가지고 온 브런치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도 결국 이겨냅니다.'라는 주제입니다.

시작하겠습니다.


타고난 재능도 없고 그렇다고 물질적 환경이 탁월한 곳에서 태어나지도 못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다른 사람은 쉽게 쉽게 걸어가는 것 같아 배가 아팠고 베알이 꼴렸다. 그래서 누가 뭔가를 이뤘다고 하면 시샘하기 바빴고 저 사람은 가진 게 있으니 당연히 쉽게 이울 수 있는 것이지 안 그래? 하며 질투 어린 시선으로 그들의 성공과 업적을 과소평가해 버렸다.  그렇게 내 삶을 비관하고 별 볼 일 없는 일상에 온갖 합리성을 갖다 붙이며 살아왔다.  그리고 내가 한 모든 것들이 어긋날 때마다 구실을 찾았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못하는 거라고 그렇게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며 지냈다.


그럴수록 현실은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꾸만 움츠려 들고 허무함만 쌓여갔다. 

삶이 망가지고 이그러트려질수록 우울감과 분노가 밀려왔다.  결국 그 모든 감정덩어리는 타인에게 돌아가지 않고 나에게 켜켜이 쌓여 몸이 망가져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친구들은 나에게 말했다. 그럴 만도 하다고, 네 삶에서 네가 겪어 온 것들은 다른 누구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라며 위로를 해줬지만 들리지 않았다.


친구들은 나를 위로랍시고 해줬지만 망한 거잖아! 이건 철저하게 실패한 삶인 거잖아!  나는 알고 있었다.

삶을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오히려 망가지는 건 나였다는 것을 시간이 지난 뒤에 알게 되었다.

그들은 저만치 멀리 달아나 버렸고 나는 삶이라는 지옥에 갇혀 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나라는 지옥에 가둬버린 것이다.


아무것도 없었다. 비빌 언덕도, 일터로 나갈 만큼의 건강한 체력도, 아이도 모두 떠나버렸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난 뒤에야 알았다. 잘못돼도 아주 많이 잘못됐다는 것을


나는 살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모든 걸 포기해 버리고 싶었다. 움켜쥐고 버텨온 모든 것은 내 가정과 아이를 위한 일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주는 이들이 없었다.

모든 게 내 탓이었다. 그리고 정말 내 탓이었다.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그때 나는 생각했다.

다 그렇게 떠나가도 내 아이들 클 때까지만 버텨보자고, 두 번의 암수술을 거쳐오면서 나는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나만 생각해 오던 시간들이 무색해 보였다. 그때 알았다. 내 걱정의 8할은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우리 아이들 걱정뿐이라는 것을. 나는 결국 엄마라는 것. 그 아이들이 클 때까지만 건뎌보자고 다짐하며 건강에 집중하기로 했다. 가난과 이혼문제보다 이젠 건강문제가 더 시급했고 내가 무엇을 먼저 해결해야 하는지 모를 때 비로소 '나'부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자 집을 나왔다. 아무것도 없었다. 가진 건 겨우 책 몇 권, 겨우 모아놓은 푼돈 몇 푼이 다였다. 살길이 막막했다. 내가 바라고 소원하던 단란한 가정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모두 내 잘못이었다. 이혼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다툼이 오갔다. 상대측은 모두 다 내 탓이라 했다. 그땐 몰랐다. 이게 왜 내 탓이었는지... 한동안 배신감이 밀려와 병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분노했었다. 하지만 알게 됐다. 다 내 잘못이란 걸. 더 자상하지 못했던 점, 더 헤아리지 못했던 점, 가장 가깝다고 함부로 대했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난 지혜롭지 못했다. 인정해야만 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했고, 버텨야 했던 시간들이 무색해졌다. 유일하게 남은 가정이란 울타리가 허물어졌을 때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졌다. 가장 많이 힘든 순간이었다. 내가 암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보다 더 몇 배는 더 고통스러웠다. 갈 곳을 잃었으니까 목표를 잃었고, 동지를 잃었으니까. 


연고도 없는 곳에서 오로지 남편 하나만 믿고 내려왔다. 그리고 이제 연고 없는 곳에서 홀로서기 중이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만 있겠다고 다짐하며 이혼하고 500미터 반경 안에 집을 구했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글을 썼다. 글밖에는 다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내 그간의 고통을 시름을 말할 수 없었다. 다들 살기 바쁘고 힘든 시간을 건너가는데 나까지 보텔수는 없는 일이니까. 아니 내가 아직 내 고통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숨죽이며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이혼 그리고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두 번의 암수술 그리고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제 다시 일을 시작했고 아이들은 커서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버텨보자고 나에겐 아직 아이들이 남았다고 지나온 시간이다. 잘 지나왔고 잘 버텨냈다.

나는 꿈을 꾼다. 목적도 목표도 없던 내가 작가라는 꿈을 꾸고 다시 일어섰다. 아파도 이혼했어도 가난해도 물러서지 말라며 당신도 나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그 길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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