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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마음아 Sep 01. 2024

나를 찾아가는 시간, 1만 조각 맞추기

1만개의 깨진 삶의 조각을 맞추며

가끔 사람들에 대하여 질문을 던져 본다. 잘 살고 있느냐고, 행복하냐고, 마음의 빈 공간을 둘러보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고 물었을 때 나의 마음 구석에는 행복 한 점 찾기가 어려웠다. 걱정과 근심이 매일같이 생각을 데려다 놓았다. 정작 지금-이 순간에 머물러야 할 나는 없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도 결혼을 해서도 아이를 낳고도 매 순간이 나에게는 힘든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마음의 틈에 햇살 한줄기 들일 날 없이 눈물 투성이었다. 그렇게 오래 살다 보니 습관처럼 부정적인 생각들이 금세 머리에 진을 처버렸다. 걱정과 불안의 옷은 벗기가 어렵다.  그것들은 신기하게도 벗어 놓으려고 할수록 더욱 강하게 달라붙어 버리는 습성이 있다. 생각이란 것이 그렇다. 버리려고 하면 할수록 아주 집요하게 인이 박혀버린다. 마치 나는 불안하고 초조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인 것처럼 


인간은 큰 사건사고가 터지지 않는 한 자기가 사는 방식대로 살기 마련이다. 늘 상 바라봐 왔던 것, 오감으로 느꼈던 시간들이 자신을 이룬다. 환경의 중요성이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난은 사람을 멍들게 한다. 감정은 마치 독감처럼 강력하고 집요하게 옮겨 붙는다. 스스로를 자각하지 않는 삶은 그래서 더 불쌍하다. 자신을 좀체 사랑할 수 없는 인간. 그래서 매일 경직된 채로 살아가야 하는 인간. 그런 인간처럼 불쌍하고 나약한 것이 또 있을까? 인간에게 생각하는 뇌를 주신건 신의 선물일까? 아니면 신의 저주였을까?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망각의 뇌를 함께 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있다.


모든 삶이 다 자기 하기 나름이란 걸 빨리 알아차려야 그나마 나머지의 삶이 유익해진다.

나는 그간의 7년 동안 악착같이 공부했다. 살기 위해서였다. 조금은 숨쉬고 살고 싶었다. 나를 구속하는 내 감정이란 감옥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행복이 절실해 보였다. 안 그러면 나도 나를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심리학에서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이 처음 동태된 배경은, 범죄사회에 대한 분석에서 왔지만, 여러 학문에서 인용된다. 

쉽게 말하면 거짓말도 한번이 쉽지 두번,세번째는 일도 아니어서 삶에서 거짓말을 달고 사는 것,

한번 약속을 어기면 늘 습관처럼 약속 어기기를 밥먹듯이 하는 것. 마음의 양심이 한번 깨져버리면, 더 큰 잘못을 저지르기 쉬운 것처럼 삶도 이와 같은 모습을 띈다.

한번 깨진 삶은 보수나 새로 갈아끼지 않으면 작은 자극에도 여러조각으로 점점 더 악화되고 파손되어 삶이 조각나 버리는 것이다.


나는 생각의 편린들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왜곡되고 파편화된 조각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1만 개 이상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꿰맞추는 일처럼 힘든일은 없었다. 기억의 파편이 너무나도 많아 보였다. 산산이 부서진 삶을 재정비하고 다시 정의 내리는데 살아온 날보다 몇 배는 걸린다고 들었다. 나는 밥 먹고 글을 읽고, 밥 먹고 글을 썼다.

아무도 없는 빈 공간의 유일한 독자는 오직 나뿐. 내가 납득이 되어야 하는 시간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착한 아이, 피해자이자 가해자, 엄마이자딸, 아내이자 나 자신을 찾는 일...


착한 아이로 사는 것만큼 내가 없는 삶은 불행하다. 나보다 타인을 위해 사는 삶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엄마처럼은 살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 때 어머니의 삶에 대해 바라보았다. 죽은 듯이 살아가는 사람. 매일같이 양보만 하다 결국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 치매 역시 스트레스를 자신의 몸으로 다 받아낸 결과다. 차라리 못살겠다고 악다구니를 쳤다면 조금은 나아졌을까?

쓴소리 못된소리를 참고 견디기보다 맞받아쳤다면 스스로 죽어가지 않았을까?


그렇게 따지면 난 성격이 그리 착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아주 못된 사람이기에 받아치며 살아온 대가가 당신을 잃은 거라면 이혼의 결과는 실패가 아닌 아주 성공적인 일이리라.


이제 건너온 시간들이 아련하게 비친다. 다시 돌아가라면 나는 그보다 더 잘할 자신은 없으니까. 엄마로서도 아내로서도 한 사람의 몫으로도 부족하지만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와있다.

내 공간, 나의 삶,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가는 시간... 마흔일곱의 나이.

비로소 작은 안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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