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마음아 Aug 29. 2024

꿈보다 직업, 난 직업이 필요했다.

18살 나의 정체성이 무너져 버렸다.

꿈이 있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많이 늙어버린 것 같다. 학교를 다닐 적에도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왜 그걸 찾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 사회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아이였던 내가 알 필요성 느끼지 못했기도 하고 또 돈이 나에게 주는 가치를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시절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재밌었고 야간 자율학습의 묘미는 분식집에서 친구들과 라면 먹는 재미가 더 쏠쏠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직업을  갖고 돈을 버는 것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솔직히 사회생활 할 때도 관심이 없었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성적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적어도 18살 이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때는 18살 겨울이었다.

"네 엄마가 나타나셨다."

 "..."

"너 보자고 하신다 볼 테냐?"

"그게 무슨 말이에요?"

사실 국민학교 시절 아이들이 주워왔다며 놀린 적이 있었다. 두 학급 학생 총인원이 30여 명 남짓한 변두리 시골학교에서 누구네집 딸이라면 동네가 다 아는 콧딱지만 한 시골인지라  나는 학교 다니는 내내 친구들의 따돌림에 시달려야 했다. 어리바리하고 미숙했던 나는 아이들의 표적이 되기 십상인 케이스였다. 한 명의 놀림은 반 전체가 가담하게 됐고 특히 고만고만한 여자아이들의 놀림거리 대상이 된 나였기에 "너 주워온 아이래"라는 말을 대수로 흘러들었다. 하지만 그 수위는 점점 높아만 갔다.


어느 날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친구의 엄마가 친구의 팔을 세게 잡아당기며 주워온 아이를 왜 데리고 왔냐며 문전박대를 당한 뒤로 어머니께 달려와 사실이냐고 따져 물었던 적이 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라며 "데리고 오너라"라는 말에 안심이 되었고 그 일은 그렇게 묻혀 지나가 버렸다.


아버지의 온갖 폭언과 매질에도 내가 버틸 수 있었던 단 하나는 어머니였다. 순둥이 우리 엄마, 일자 무식쟁이 우리 어머니는 성정이 바르고 착하신 분이었다. 그러니 우리 아버지 같은 분과 인연이 되어 집안을 일구고 가신 게 아닌가 생각한다.


심한 사춘기 시절을 겪으며 아버지와의 갈등은 심해졌고 나의 반항이 수위를 높여갈 무렵 아버지가 나를 불러 앉아 놓고 하시는 말씀은 "그간 네게 못할 짓을 했구나!" 이유없이 때린적도 많다고 하시며 "미안하다!". "어디 한번 안아보자"라며 술김에 끌어안으셨다.  늘 저 아버지를 벗어나 도망치든지 죽어버려야지 했던 18살 사춘기 시절

나는 그날을 잊지 못했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지? 헷갈리고 아리송했다.  늘 반복되는 매질은 나의 유년시절을 고통스럽게 했다. 한날은 나를 보고 널 데려다 길렀으며 그날도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아버진 그런 사람이었다. 시절을 잘 못 타고나, 아니 당신도 부모를 잘못 만나 힘든 삶을 살다 가신 분이셨고 그 결핍을 술로 채워버린 사람. 강인하고 뚝심 있는 똑똑한 사람이었으나 마음 한구석 위로가 필요했던 사람. 그 사람이 내 앞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해버렸다. 이제 컸으니 엄마를 찾아 주겠다며 내게 묻지도 않고 또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나는 속으로 울고 있었다. '누가 찾아 달래? 여기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는데..'  마음대로 키워놓고 이제 다시 나보고 네 엄마를 찾아가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어 버린다.


믿고 싶지 않았다. 어린 시절 분명 어머니께서 아니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그 말이 아니라고 말하는 지금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미웠다. 이 말이 진짜냐고 물어봤을 때 왜 이제 와서 아니라고 말을 못 했는지

너는 죽어도 내 딸이라고 왜 말을 못 하고 묵묵부답으로 침묵해 버렸는지...

그 모든 게 싫어졌다. 당신을 한참 미워하고 싶었는데 "미안하다"는 말은 지금 당신이 할 타이밍이 아니라고

그 많은 시간 동안 당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화가 치밀어 올라왔을 때 나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는데 미리 당신은 그만 끝내버린 그날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해야만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지?

순식간에 하얘진 머릿속. 되묻는 질문 "찾을 테냐?"라는 말에 그날은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그날이 이후로 버린 사람이 이제 와서 왜?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갓난아기를 길에 버렸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18년을 그렇게 모른 채 살아왔다.

몰랐어도 될 일이었다. 알면 달라질 무엇도 없을 테니까...


그 생각들과 함께 이곳도 내가 쉴 곳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긴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이 아니고 내가 믿어왔던 사람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직업을 가져야 했다.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보다 먹고살만한 직업이 필요해 보였다.

19살 처음으로 한 번도 하지 않던 공부를 시작했다. 더 이상 밥을 축내며 어리광을 받아줄 이들이 여기에 없을 테니까... 그렇게 막무가내로 변해버린 나를 이쁘게 봐줄 사람도 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19살, 꿈보다 직업이 필요했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전 09화 품행제로, 성격대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