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린 건 충격, 오기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사랑스러운 내 자식이 어느덧 10대를 훌쩍 넘어 사춘기가 되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이건 뭐야? 라며 물어 올라치면 가슴속 사전을 다 꺼내서라도 대답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다.
나의 어린 시절이 그러했다고 한다. 시시콜콜 물어 오는 것들이 너무 많아 대답해 줄 수 없었던 어머니는 늘 "네가 한번 찾아봐"라며 나의 호기심 어린 마음을 탐구심으로 바꿔주시곤 하셨다. 나는 온 천지가 놀이터였다. 콩밭, 과수원, 논이며 산에 있는 모든 신기한 자연현상을 그대로 눈과 귀 입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그런 나는 유독 아버지의 먹잇감이 되어 늘 회초리를 맞아야 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매질이 계속되었다. 아버지는 공포 그 자체였다.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거나하게 취해 들어오셔서는 배개위에 나를 세워 놓고 종아리를 후려갈겼다. 횡설수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할 말들을 늘어놓고 제풀에 꺾여 잠이 드시면 나는 퉁퉁 부운 다리를 이끌고 새암가에 나와 흐르는 물로 열기를 씻곤 했다. 아프고 서러웠다. 잘못을 한 것도 없이 그저 늘 연례행사였다. 아버지는 습관처럼 매를 들고 오셨고 나는 오랫동안 묶여 있던 코끼리처럼 학습된 무기력을 호소하며 끌려가곤 했다. 일상이었다.
시퍼렇게 멍든 양쪽 다리는 얼얼했다. 목이 아팠다. 울면 운다고 맞아야 했기 때문에 이 악물고 참아내야 했다. 설움이 복받쳐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밭에 나가 계셨거나 장에 가셨기 때문에 아무도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오직 그 시간은 내가 치러내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피해 동산으로 올라갔다. 붉게 노을 지는 저편 언덕을 바라보며 동요를 부르곤 했다. 가만가만 조용히 노래를 부르고 나면 내 마음이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하늘거리는 들판, 가벼운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가며 눈물을 닦아 주는 것 같았다. 바람은 내 마음을 익히 하는 것 같았다. 또다시 아버지가 부르면 어쩌지 하는 두려운 마음을 안고 잠시 동산에 앉아 쉬는 것이 나에겐 잠시나마 숨 쉬는 공간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버지를 이겨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아버지의 술 취한 모습, 고함지르고 욕을 늘어놓는 것들을 더 이상은 들어주고 싶지가 않았다. 대들고 같이 소리를 질러댔다. 아버진 더 맹수같이 돌변했다. 한 번도 자신 앞에서 이렇게 대드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따귀를 맞아도 필사적으로 대들었다. 차가운 얼굴빛, 무심해진 태도, 둘 다 똑같이 폭주를 하고 있었다. 그놈의 지긋지긋 한 술! 원수 같은 술! 당신 보란 듯이 찬장에서 40도 정도 되는 긴 양줏병을 꺼내 양푼에 부어냈다. 보라고! 당신 앞에 딸이 죽을 각오를 하고 덤비고 있는 거 안 보이냐고! 나는 눈하나 깜짝이지 않고 다 부어내 버렸다. 아버지는 얼굴을 돌려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있는 힘껏 숨도 쉬지 않고 마셔버렸다. 그리곤 밖으로 나갔다. 문 밖을 나가면서 나는 필름이 끊겨 버렸다. 야밤이었다. 어둡고 깜깜한 밤에 그대로 풀밭으로 꼬구라져 버렸다. 어떻게 내 방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이틀 남짓 내 방에서 잠이 들어버렸다고 한다. 죽다 살아난 것이다. 작은 아주머니가 오셨다. 살아났구나! 하시며 죽을 가져다주셨다.
아버지는 여전하셨다. 술을 마시고 더 이상 나와는 마주치지 않으셨다. 중학교 내내 아버지와 오랜 시간 냉전상태가 계속되었다. 둘 다 차갑고 모질렀다. 나는 그럴수록 더 바깥으로 나돌아 다녔다. 집도 학교도 하나같이 즐겁지 않았다. 만나는 친구들과도 그렇게 우정 어린 교재도 아니었다. 삐딱선을 탄 아이들 몇 명이서 오락실이나 노래방을 어슬렁 거리며 다니던 그런 사춘기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집도 춥고 밖은 더 추웠다. 그렇게 추운 아이들이 서로의 온기를 나눠가지며 잠시 머물다가 꾸역꾸역 집으로 들어가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아버진 아버지대로 나는 나대로 굽힐 기미가 없어 보였다. 자존심의 대결이었다.
지독하게 싸워댔다. 한날은 아버지의 생일날인지도 모른 채 쏘다니다가 늦게 들어온 내 얼굴에 친척들이 다 보는 앞에서 맥주를 찢그리셨다. 가장 수치스럽고 모욕스러운 날로 기억한다.
그때 처음으로 이렇게 살면 뭐 하나 싶은 자괴감이 밀려왔다. 아무도 나를 사람처럼 대해주지 않는 집. 말썽만 피우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아니 아무도 나의 안위 따위는 묻지 않는 여기 이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사라져도 될 일이 아닌가 하며 점점 나를 한 곳으로 몰아붙였다. 정말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 길로 가방이며 책을 불 질러 버렸다. 이딴 거 해서 뭐 해! 그래서 뭐? 그리고 그 길로 부엌칼을 들고 내방으로 왔다. 모두 잠든 저녁 11시 시퍼런 칼을 쥔 나의 손, 정적, 생각 없는 눈동자, 그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그것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들어 버렸다. 내 자존감이 아니 그나마 버티던 내 마지막 자존심마저 처절하게 무너져 내렸다. 밤엔 악몽과 싸우고 낮에 가족들과 싸워야 했다.
학교는 학교 나름대로 의미 없이 굴러갔다. 내가 설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그것이 사춘기의 내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