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자연스러움이 가장 나다운 삶입니다.
오늘은 비가 올 것 같은 날씨가 하루 종일 이어지네요. 수분이 많은 날은 우리 어머니들 관절에서 미리 알고 소리를 냅니다. "얘야 비가 올 것 같으니 비설거지 미리 해둬라" 하셨던 옛날이 생각났습니다. 어김없이 회사에 출근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비설거지는 아니더라도 한 주 살아갈 준비를 미리 해두곤 합니다. 밑반찬이며 정리하지 못한 곳을 쓸고 닦아냈습니다. 제 직장은 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입니다. 하지만 저는 거의 7시 30분 더러는 7시 20분에 도착을 합니다. 미리 도착해서 아침 청소를 하고 나서는 커피 한잔하며 시작하는 게 마음이 여유롭고 더 좋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이전에 청소하시던 분의 일거리가 줄었다며 좋아하십니다. 제 강박스러운 부지런함도 더러는 좋을 때가 많습니다.
출근길 근처 중학교가 있어 교복 입은 친구들을 많이 마주치게 됩니다. 그러다 간혹가다 마주치는 모자가 있습니다. 정신지체 장애아 같은데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아주 느린 걸음으로 학교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의 재잘거리는 웃음소리며 떠드는 소리에 묻혀 안보일법 한데도 이 두 모자의 분위기는 매일 회색빛처럼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이 그저 땅만 보고 걷기때문에 눈에 들어 오게 되었습니다. 다른 곳은 다 해가 쨍쨍한 날씨 같은데 그 두 모자의 하늘만 잿빛처럼 어둡게만 보입니다. 좀 웃어도 보고, 소리를 내도 될 텐데 죄인 같은 모습입니다. 어깨는 한없이 움츠려있으며 고개는 땅만 보고 걸으니 오히려 더 눈에 잘 띄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장애를 가진 입장이 아니라서 조심스럽지만 그렇다고 장애가 무슨 죄를 지은 거나 불행의 씨앗만은 아닐 텐데 웃음이 사라진 얼굴이 마치 나는 불행한 채 살아가야 해라는 낙인이라도 찍힌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합니다.
오히려 더 밝게 웃고 더 당당하게 세상과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인데 그것이 마치 병인 것처럼 늘 환자처럼 지내야 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한날은 다리가 너무 아파 정형 외과에 가서 난생처음 하반신 부분 엑스레이를 찍었습니다. 다리가 아파서 갔는데 다리는 멀쩡하다는 얘기와 함께 꼬리뼈 마지막 척추 부분이 짧은 기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허리가 더 아플 텐데 다리가 아픈 것이 이상하다며 그렇게 진료를 마치고 나왔습니다.
저는 허리 쪽은 문제가 없습니다. 기형이라는 말을 듣고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살았다면 어떤 일도 재미가 없었을 겁니다. 내가 가진 선천적 기형으로 삶의 어느 부분이 망가질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발이 평발이어서 축구를 못하진 않습니다. 헬렌 켈러나 루게릭병을 앓다가 간 스티븐 호킹 박사님도 그러했듯이 자신이 가진 어떤 것도 삶에 방해가 될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미리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우울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리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편견이나 선입견, 틀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시선과 편견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편견입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존중하고 아껴줘야 할 첫 번째 사람이 나여야만 하는데 오히여 내가 나를 부인하고 거절하는 첫번째 사람이 되어 잘 살아야 될 삶을 외면하는 일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세상도 각박해졌고 경제도 어려워 졌다는데 나는 그냥 웃으며 살면 안됩니까?
돈드는 일도 아니고 힘쓰는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지 알 수 없지만 웃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삶을 좀 즐기며 살아도 될일입니다.
내 마음 하나 바꾸는 일도 어려우면서 어떻게 세상을 헤쳐 나가시려구요.
그러니 나부터 웃고, 나부터 잘 살고 볼 일입니다.
일이 복잡한거지 마음이 복잡할 일은 아닙니다.
마음이 한없이 여유로운데 또 복잡할 일은 또 무엇인가요..
모든 장애를 가진 이들도 그저 평범한 일상을 맞이하고 함께 웃고 즐기며 한 세상을 자유롭게 살 일입니다. 가장 자연스러움이 가장 나다운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