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우리는 더 찬란할 것이다.
5월 그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연휴를 맞이하여 겸사겸사 나를 보러 온다고 한다. 내려오는 데만 8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웬만한 명절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도로 곳곳이 정체되어 혼쭐이 났다고 하니 아마도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부모님 보려고 이동한 분들과 더러는 여행 차원에서 내려오는 분들로 혼잡한 귀향길이었던 모양이다. 내려올 땐 고생스러워도 부모님 볼 요량으로 들렀다 가는 그 마음이 참 이쁘기 그지없다.
나야 뭐 이제는 해 드릴 부모님이 없기에 그 모습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예전엔 많이 우울했다. 잘해드린 적적히 없어서다. 나는 막무가내인 사춘기를 보냈다. 집이 꼴 보기 싫었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내성적인 나에게 친구를 사귀는 것은 고역이었다. 뭔가 소통이 잘 안 되었고 사실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싶기도 했기에 아이들과 마음 맞춰 뭘 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 나이 마흔이 훌쩍 넘어왔다. 이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굳이 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느니 내 일이나 열심히 하자는 차원에서 일상을 가꾸고 그 안에서 또 소박하게 다른 일들을 해 나가려고 한다. 가버린 세월을 후회하고 한탄하는 것은 나만 좋을 뿐이지(사실 좋은 것도 아니다. 지지리 궁상떠는 일뿐.) 효도는 아닌 것 같다. 달리 마음을 고쳐먹은 뒤로는 나에게 집중한다. 내가 건강하고 잘 사는 것이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예후인 것 같아서다. 아마도 좋은 데에서 즐겁게 노닐고 계실 테니 오히려 더 좋다. 살아생전 고생한 모습이 역력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친구와 조우하고 2~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간단히 밥 먹고 차 한잔하고 서둘러 귀성길에 오르는데 자꾸만 나이 든 서로의 모습을 보며 애틋한 마음이 들면서도 또 다음을 기약하며 이렇게 얼굴 볼 수 있는 것만으로 참 좋구나 싶다. 내 아이만 크는 줄 알았지 우리가 나이가 들어가는지는 모르고 살았는데 얼굴 여기저기 잔주름이 피어오른 걸 보고 있노라니 새삼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싶었다. 대학교 시절 가장 반짝이는 모습을 보았고, 결혼 전후 이쁜 모습만 보다가 40의 중년이란 나이에 만났으니 세월도 빠르고 변화된 모습을 일시에 마주하게 되니 웃음도 나왔다. 한 세월이 금방이구나 싶다.
사는 얘기에 정신없이 웃다 앞에서 눈물짓는 친구의 모습을 또 애련하게 바라보다 서로를 토닥이다 헤어졌다. 잘 살아온 흔적이 오늘이란 시간으로 돌아온 것 같다.
다음의 우리는 또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50 이후의 모습들도 기대가 된다.
예쁘고 곱게 늙어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친구의 가슴 아픈 사연도 들려온다. 태어날 땐 순서를 정해 나왔다 치치만 가는 순서는 없다더니 갑작스러운 비보에 황망하기까지 하다. 나야 뭐 일찍이 모든 것들과의 작별을 맞이해서 이제는 그 슬픔의 무게가 많이 덜어졌다. 시간이 약이라는데 가장 측근의 비보는 시간이란 지우개도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사라져 가는 것들을 붙잡고 살기엔 남은 나의 시간과 내 옆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또 다른 지인들이 있기에 버려야 할 순간에는 깡그리 비워내야 되는 것을
삶이 좀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고행의 순간이라면 그런 게 아닐까?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과의 이별이 이 생에서 주어진 가장 큰 고통이라는 것
그러니 뭐 다른 것들의 고통과 아픔들과는 비교도 안될 일이다. 살아가면서 주어지는 스트레스와 고통은 진정한 사라짐들 앞에서는 별일이 아닌 것이다. 이별, 이혼, 관계의 어긋남 들, 사기, 기타 등등... 내가 있음으로 인해 벌어지는 것들이기에 그 역시도 감사한 순간이다. 반짝 살다가 갈 일이다. 내 곁에 오는 사람에게 감사할 뿐이고 나를 떠나는 인연에게도 잘 지내기를 바란다.
다 별일 아니다.
삶의 흐름을 잘 읽어내고 준비하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재미고 매력이다. 각자가 주어진 그 멋진 재주와 그 한 사람만이 가진 빛의 크기와 색깔이 모두 다르기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가진 나만의 빛깔, 각자의 우주, 각자가 가진 능력을 살 펼쳐 나가시길 이 밤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