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표현은 오늘 해도 늦습니다.

나의 삶을 만들어 주신 내 어머니

by 안녕 마음아


그룹 지오디(GOD) 의 '어머님께'라는 노래를 다들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어머니 보고 싶어요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끓여먹었던 라면

그러다 라면이 너무 지겨워서

맛있는 것 좀 먹자고 대들었었어

그러자 어머님이 마지못해 꺼내신

숨겨두신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자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야 이 야 이 아 아 아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지오디 '어머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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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어머니들이 그렇듯이 자신은 항상 괜찮다! 괜찮다! 하시죠.

자식들 걱정에 밤잠을 설치 가며 온 가족에 대한 사랑과 정성을 쏟아놓고 좋은 시간을 뒤로한 채 이 지상에서 영영 작별을 고합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세상에 영원할 것 같은 큰 존재가 하루아침 이슬처럼 사라진다는 사실을요.


모든 어머니가 새벽이슬을 맞아가며 아침밥을 지으시고 가장 큰 고봉밥을 아버지와 자식에게 양보하시며 자신의 밥그릇엔 누렇게 탄 누룽밥을 잡수시면서도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지으셨다는 사실에 늘 밥상 한켠엔 뭔지 모를 아련함이 묻어납니다.

세상 욕 한마디 남 헐뜯는 한마디 없으시던 저희 어머니는 손가락 마디마디 뜯어지고 갈라져 새까맣게 흙물이 들어 계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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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두건을 쓰시고 그 많은 농사일을 가냘픈 몸으로이고 지고 나르셨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한날은 어머니의 약지 손가락에 낀 까만 때가 족족 끼어있는 쇳덩어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반지였습니다. 어디서 주워다 껴도 그보단 나을 것 같은 생각을 했지요.


늘 마음에 밟혔습니다. 어린 시절엔 반지가 저렇게 생긴 게 맞나?

그런데 어머니 손에 끼어있는 그 반지를 보며 어머니도 여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끔 누구네 집 결혼식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을 때만 동동구리모를 바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일상을 살면서 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사시는 한 여인도 누구에겐 사랑받는 여인이자 누구에게는 곱고 이쁘던 자식이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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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크면 저 손가락에 이쁜 반지 하나 꼭 끼워드려야겠다.

남들은 여행이라도 다니시던데 우리 어머니는 일 년 삼백 예순 날을 늘 두건을 덮어쓴 채 비 오듯 땀을 흘리시며 망태기만 이고 지고 다시시는 모습에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놀러나 한번 다녀오시지, 이 좋은 날 누구 하나 친구도 없으셔서는 매일같이 막네 인 나만 데리고 이산 저산 산나물이나 캐러 다니시거나 허구한 날 고추밭 무밭 생강 밭 잡초제거 아니면 씨 뿌리는 일만 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런 어머니 뒷모습만 보고 자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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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배우지 않았어도 여자의 일생이 불쌍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중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 서울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놈의 집구석 잘 있거라~하며 속 시원하게 작별을 고하려던 그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달려 나오신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초등학교 땐 친구 같고, 중학교 이후론 원수같이 변한 딸인데도 어머니에게 저는 언제나 친구 같은 자식이었기에 작별이 쉽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시며 버스를 기다리는 저에게 밥 굶지 마라 하십니다.

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대수롭지 않은 듯 "내가 뭐 죽으러 가나?" "엄마나 잘 챙기고 계셔!"라며 서울로 상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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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우리의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얼마 안 가 어머니는 치매 판정을 받으십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늘 웃고 계시던 어머니가 기억을 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말이 없었다 뿐이지 늘 아버지와 자식들 밥상을 정갈하게 차려내시던 분이셨기에 잘 있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어머니의 "누구요?"라는 첫마디에 무심했던 지난날들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날 저는 첫 월급으로 어머니 반지를 먼저 샀습니다. 월급 68만 원에 반지가 48만 원이었습니다. 반지 목걸이 팔지 세트를 구입해서 시골집으로 내려가 허공을 바라보며 웃던 어머니의 손가락에 노란색 반지를 끼워드립니다.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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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늦게 와버린 것입니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내일, 나중에 하지라는 말은 없는 말입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만이 살아있는 내일입니다.

마음이 더 늦기 전에 움직여야 합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 더 표현하고 조금 더 좋은 사람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사랑 표현은 오늘 해도 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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