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맞이로 여기저기 분주한 모습이 보인다. 나 역시 조촐하게나마 상차림을 준비하려고 장을 봤다. 학교 갔다 오겠다며 나선 둘째를 생각해 갈비찜거리며 과일들을 많이 사다 놨다. 오후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이번 추석명절은 할머니네 집에 가보려고요"
"어? 어, 그래... 그래야지"라는 대답을 무심결에 하고 아들에게 잘 다녀오라고 일렀다.
그러고 나서 연휴가 시작되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몸이 아팠다. 아침부터 38도 고열이 시작되었고 여지없이 출근을 했다. 하루종일 마스크를 끼고 있으니 답답하기도 하고 열이 더 오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 일을 치러냈다. 고단하고 힘든 하루였다. 기분 좋게 명절을 맞아하는 사람들 속에 몸이 아프니 만사가 귀찮은 나는 이방인이 따로 없다. 선물을 건네주는 해맑은 얼굴에도 나는 무덤덤하게 건네받으며 오늘 하루만 잘 버텨내자라는 마음만 가득했다. 가장 기본인 건강을 잃는다는 것은 이토록 삶을 회색빛으로 만든다.
삼일 내내 고열과 통증에 시달렸다. 연휴라서 문을 여는 병원도 없거니와 열외엔 다른 증상은 없으니 굳이 병원으로 달라가기보다 집에서 응급처치를 해야겠다고 자리에 누웠다. 얼음주머니로 머리에 열을 식혔다.
틈틈이 오렌지주스와 물을 마셨다. 해열진통제도 먹었다. 열이 심할 땐 뼈마디가 욱신거리고 아팠다. 열이 조금 내려갈라치면 옷이 젖을 정도로 땀에 흠뻑 젖어야 했다. 그러면서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에 조금 씁쓸함마저 들었다. 늘 가장 힘들고 고된 순간에는 사실 치가 떨리도록 아팠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아, 이젠 혼자서도 이겨낼 수 있잖아!'
'아픈 땐 아무도 도와줄 수 없어!'
'스스로 이겨낼 수밖에 없는 거잖아!'
그리고 너는 이미 그러한 훈련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방법도 알 고 있잖아! 그런 생각이 들자 쓸쓸함이나 외로움이 금세 사라졌다. 모든 건 내 몫인 거다. 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나의 능력을 벗어나지 못한다.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집중하고 능력 밖에 있는 것들은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다.
만약 이 와중에 아이까지 있었다면 밥걱정에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올라왔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아이가 할머니집으로 가있게 돼서 감사했다. 옆에 있었으면 이 몰골을 다 바라보며 걱정을 하게 만들었을 시간이다. 찬꺼리를 잔뜩 사다 놓고도 옴짝달싹 하지 못하니 완전조리식품을 배달했다. 추어탕이며 사골국물등을 시켰다. 아파도 먹을 것은 잘 챙겨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절을 잘 타고나 이런 호광을 누리고 산다.
나의 삶에서 누군가 옆에 있었을 때와 아무도 없었을 때를 비교해 봐도 달라진 건 없었다. 한 사람이 온전히 사랑받은 경험이 전무하면 표현에도 미숙함이 많이 드러난다. 가정환경이 그래서 중요한 이유다. 결손가정이 문제가 아니라 그 아이만의 단 한 사람이 그 아이에게 얼마나 적정한 사랑을 안겨주었느냐가 중요한 부분이다. 가장 첫 번째가 자신이 타고난 기질이라면 두 번째는 자라온 환경이 뒤를 잇는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가 만나온 수많은 환경들, 친구, 이웃, 조직등이 그것이다.
최초의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환경도 충분히 그가 성장할 요소들이 많았음에도 그가 발현시킨 생각이나 관점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기에 누구를 탓하기보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에 어쩌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기 성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삶에서 배우고 있다. 오직 나만이 나를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오늘 도 나를 살리기 위해 분투 중이다. 아픈 몸을 일으키는 것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아프니 새삼 모든 것이 귀찮은 일이다. 세수하고 이를 닦아내는 일도 천근만근이다.
추석, 다 필요 없고 건강만 해라! 당신이 가진 전 재산은 건강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