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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마음아 Sep 18. 2024

지상에서 허락된 시간 나로살기

목적? 목표? 그 딴거 뭐! 

연휴 4~5일을 지독한 고열과 몸살로 시달린 후 맞이하는 첫끼다. 늘 심하게 아픈 날이면 그 옛날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들이 더 간절해져 오는 건 그 세월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동치미 국물을 벌컥벌컥 들이키자 매초롬한 국물이 속을 시원하게 타고 흐르며 감각을 다시 깨워주는 듯했다. 그리고 펄펄 끓인 추어탕을 누가 쫓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연거푸 들이키고 나니 등에서 땀이 주룩 흘러내린다. 


살았다. 숨이 틔여지고 눈이 맑아진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일임에도 시시때때로 아이고 소리를 달고 살았다. 몸이 아프니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도 귀가 아팠다. 보이는 모든 것이 다 귀찮을 지경이었다. 추석이라고 받은 고가의 선물이며 먹거리들이 이렇게 거추장스러울 때가 없었다. 고작 바이러스 하나에도 맥을 못 추는 몸상태로 무엇을 한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돌아 눕는 마디마디 통증이 따라붙었다. 잠들고 다시 눈 뜨고 화장실 가는 일이 전부였다. 그러다 꿈을 꿨다. 늘 심하게 아프던 날에는 부모님이 여지없이 총 출동하셨다. 어머니가 나오셨고 그다음 날에는 안 되겠는지 그 젊잖고 묵뚝뚝한 사람인 아버지가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치셨다. 

" 그만 일어나라!"

"뭐 하고 있는 거냐!"

"당장 일어나거라!"


등짝을 두드려 패시는 아버지의 손길이 매서웠다.

그런데...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손길이 야무져서 더 시원했다.

잠에서 깨고 나니 몸이 한 결 나은 듯했다.


정말 심하게 아플 때 꿈에서라도 나를 깨우는 분들이 있다.

지나고 나면 그분들 덕분에 또 내가 다시 얼어나서 걸었던 게 아닌가 싶다.

감사함이 더해가는 순간이다.


아직 때가 아니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 이르시는 호된 꾸지람에 정신이 번뜩 들때가 있다.


이 멍청한 머리는 매일 까먹는다. 휩쓸리듯 살지 말자고 다짐했던 날들이 무색하게도 차짓 뭔가에 쏠려 있는 날들이 많아지면 여지없이 건강에 이상신호가 뜬다. 시간의 궤적을 따라 나를 찾아 나서겠다는 발걸음이 마음과는 다른 게 헛발질을 할 때가 그렇다. 나는 오늘도 헛물을 켰다. 조금 더 나은 나를 찾겠다며 편승해 버리는 욕망이란 궤도를 수시로 넘나 든다. 나는 천천히 가고 싶다. 주변도 보고, 바람도 쏘이고, 한참 볕을 쬐고 싶다.


가만가만 돌아보지 않은 것들을 정리하고 난 후 뭉근하게 데워진 물에 녹차를 우려 마셨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좋다고 만든 이 시스템도 실패작이란 사실을... 모두가 행복하지 않은 이 시스템인데 왜 모두가 그를 쫓아 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난 오늘도 다짐했다. 철저하게 시대를 역행하는 역행자이자 순응자로 살고 싶다고. 이제 정말 내식대로 살고 싶다.  더는 행복을 늦추며 살고 싶지 않다. 다른 것에 마음을 뺏겨 지금 이곳에 있는 아름다움을 놓쳐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딱 하루, 지상에서 허락된 이 시간만큼은 오직 나로 살다갈 예정이다. 어쩌면 그 첫 번째로 글쓰기 여정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어디에서도 배워보지 않은 글쓰기는 그래서 더 자유롭고 나다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목적도 없었고 목표도 없어서 더 완전한 자유에 이르는 목적을 실현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릴적 나의 놀이가 그랬고,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잠깐의 설렘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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