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다. 친정에는 발길도 못 붙이던 내가 시댁에서 전을 부치고 차례상을 준비하는 일은 언제나 시어머니와 나 그리고 베트남 형님이었다. 그 역시도 작은형님은 늘 돈으로 준비하는 일들이 많다 보니 전 부치고 하루종일 불 앞에서 시름해야 하는 것은 나와 베트남에서 시집온 나와 처지가 비슷한 큰 형님이 전부였다. 그래도 그것이 탐탁지 않거나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둘째 형님네는 경제적으로도 여유롭고 잘 나갔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의 선에서 부모님께 최선을 다했으니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처지에 못해주는 부분을 해주고 있으니 돈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늘 고생하고 뒤처리를 하는 내 입장에 대해서는 그들의 태도와 행동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밥 먹는 위치며 나를 대하는 태도들에 속이 상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들의 행동들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왠지 모르지만 늘 뒷전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쩌면 친정식구 하나 없는 나의 자격지심도 한몫을 했는지도 모른다. 친정이 없으니 어떤 굴욕적인 말을 듣더래도 또 작은 형님과 비교가 되니 시댁 식구들의 태도 역시 사람에 따라 차별적으로 대하는 것 같아 명절 끝은 항상 기분이 다운되기 일 수였다. 그런 아내의 마음을 조금만 헤아려 주면 좋으련만 착한 아들 코스프레를 하는 남편 덕분에 마음의 앙금이 점점 더해만 같다. 어쩌면 남편의 그런 모른척하는 태도가 더욱 얄미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살려면 애초에 그런 마음을 포기하며 살아야 했는지도 모른다.
이번 명절, 아들이 먼저 할머니 집에 다녀오겠다고 말을 건넸다. 되도록이면 안 갔으면 했지만 아이가 자기 핏줄을 찾아가는 것에 대해서 만큼은 막고 싶지 않았다. 단 그들이 내 아이가 갔을 때 제발 마음속 말을 그대로 내뱉지 말고 걸러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럴 사람들도 아니란 걸 나는 익히 잘 알고 있다.
돌아오는 날이 되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속으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명절날 너희 엄마 너 여기다 두고 한참 편하게 지냈겠네."
나는 말없이 듣고만 있는 아이에게 똑부러지게 말하라고 했다.
"네가 그곳에 간 이유는 엄마를 편하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 보고 싶어서 간거라고"
"나는 할머니 보러 여기 왔다고"
그렇다 나는 아이가 있든 말든 편하거나 불편한 것이 없는 사람이다.
굳이 아이가 듣는 앞에서 전화를 건 타이밍에 그런 소릴 들으라는 듯이 할 필요는 없었다.
이혼 후 모든 잘못이 내 탓이었던 사람
똘똘 뭉쳐 나를 비난하기 바빴던 사람.
사는 내내 한 번도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없었던 사람
그리고 여전히 비난과 비아냥을 일삼는 그의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내 선택에 조금의 후회도 미련도 없게 만들어 준 분이시다. 그때, 사고가 나서 올라온 첫날 이 모든 불운이 내 탓인 것 마냥 내 어머니를 욕했을 때. 나는 그 길로 헤어졌어야 했다. 그날 내가 시간을 지체한 것에 대해서 만큼은 후회스럽다. 하지만 지금 나는 옳은 결정을 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가끔 나는 그 사람의 인생이 불쌍해질 때가 있다. 멍청이 같은 그 사람이 조금만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인생의 꽃이 펴질 사람인데 그 착한 사람 코스프레에 갇혀 아직도 부모님의 그들 밑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사는 모습을 볼 때면 조금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전 남편이지만 착하고 선한 사람이었고 배움이 부족하여 고집이 굳어진 사람이기에 그 무지와 미련함을 탓할 생각은 없다. 조금만 유연하고 조금만 더 용기를 내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 이제 내가 먹고 싶은 것들 위주로 요리를 한다. 상 끄트머리가 아닌 상 하나를 독차지하고 앉아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먹고 차를 마신다. 그릇을 가져오라는 심부름도 맛있는 것 다 넘겨주고 남겨진 반찬이 아닌 가장 좋고 싱싱한 음식을 내 앞에 차려 놓고 천천히 음미하며 밥상을 마주한다.
난 요즘 홀가분하다.
겉치레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애써 웃지 않아도 된다. 이런저런 말도 섞지 않아도 되고 신경 쓸 사람도 없기 때문에 뱃속도 편하다. 10년을 함께 대면했어도 섞이지 않고 차곡차곡 쌓이던 묶은 채증이 시원하게 뚫리어 내려간 기분이다. 그리고 가장 행복한 건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애걸복걸 하며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나 좀 봐달라며 매달리는 것처럼 슬픈 일도 없을 것이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다시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건 다시 봐도 나에게 참 못할 짓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