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사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나이였을 거다. 예닐곱 살 무렵 내 눈앞에 보이는 참새며 사마귀 생쥐 등의 마지막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아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 녀석들을 한켠에 모아 공동묘지를 만들어 주었다. 어디서 들었을까? 종교가 없던 나이에도 천국은 있을 거라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녀석들의 명복을 비는 행위를 했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 싶다. 늘 장독대에 물을 떠놓고 비는 행위를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정성 그 차제였다. 어머니가 비는 것들은 타인을 위한 것이었다. 그 맑고 투명함으로 비친 어머니의 얼굴, 주름진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던 땀방울들은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았던 어른의 모습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정확한 시간에 나갔다.
7시.
도착시간 7시 30분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킨다.
비가 올 것 날씨라서 그런지 실내는 큼큼한 냄새가 났다.
사무실을 정돈하고 나오는데 커다란 바퀴벌레 한 마리가 벌러덩 뒤집혀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냉큼 짓이겨 버리거나 화장지를 한 움큼 떼어다 눌러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저씨 드라마를 보면 지안의 모습과 닮았다. 벌레를 보면 호들갑을 떨고 도망치는 여자들을 볼 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툭 눌러버렸던 나였다. 시골 출신다운 나의 모습이다.
그런 벌레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살벌하게 압사시키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일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오늘 아니 명상을 하고 나서부터는 달라졌다.
한낱 미물일지라도 다 그에 맞는 역할을 하러 왔기 때문에 이유 없이 살생을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내에 들어오는 귀뚜라미, 다리 많은 벌레 등을 그냥 휴지로 살포시 잡아 밖으로 던져 놓았다.
살 녀석이면 살고 죽을 녀석이면 죽을 것이다.
오늘 그 녀석의 발버둥을 보자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곧 눈이 마주쳤다.
가만히 바라보는 눈, 그리고 갸우뚱거리는 얼굴...
나무젓가락을 들고 와서 몸통을 잡았다.
'살았군' 하는 마음인지 미동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너도 살려고 애쓰듯이 나도 살려고 늘 애써왔던 시간들이 겹쳐지며 연민을 만들어 냈으리라. 그리고 그렇게 가만히 지켜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바퀴벌레를...
나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찼을 때는 남이 보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 주변을 탐색하며 늘 새로움을 찾아 나서던 나의 모습과는 반대로 나이를 먹을수록 텅 빈 눈, 텅 빈 마음으로 살던 20~30대의 내 모습.
껍데기를 화려하기 치장하기 위해 애쓰던 나의 모습, 발버둥 치며 살았던 나의 모습 속에는 남들 따라 하기 바빴고 못 쫓아가면 안달이 났다. 그 시절은 왜 그렇게 하는 일 없이 바빴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그 시절 덕분에 지금의 나는 조금은 여유 있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게 됐는지도 모른다.
오늘에 이르기 위해서 젊은 날을 그렇게 달려왔을 것이다.
오늘 밖으로 내친 바퀴벌레는 날개가 있었다. 한참 머뭇거리더니 멀리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멋진 슈트를 입고 날개까지 달린 녀석은 얼마나 더 멀리 날아오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