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해지고 싶다면 성찰하라
마음을 매일같이 바라보는 사람은 고요하다.
시끄럽고 복잡한 사회 속에 나를 담그고 있는 만큼 내 마음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때가 많다.
늘 고요하고 편안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반드시 일어서는 사람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역경 속에서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았던 사람들이다.
그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작은 용기, 아니 어쩌면 오기가 다시 한 발을 세상 속에 던져 놓게 한다.
프로이트는 생의 추진력에는 상반되는 두 가지 에너지가 있다고 말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다.
다시 말해 자기 보존 본능(삶)과 자기 파괴 본능(죽음)이다.
우리는 때로 목적지를 향해 달리다가도 순간 목적을 잃고 방황하기도 한다.
맞다. 삶은 내가 정한 방식대로 굴러가지 않는 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다. 또 우리는 보통 삶의 목표에서 에너지가 나온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목적과 목표가 상실되었을 때 나오는 생의 욕동은 가장 진실되게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그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 한번 더 나아가는 힘! 그것이 의식이든 무의식적 본능이든 상관없다. 목적 없이 정처 없이 걷다 보면 길이 열리는 순간이 있다.
불안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아도 그저 걷는 사람들..
나는 이런 단단한 사람이 좋다.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들이 좋다.
이 사람들은 분명 매 순간순간 가장 어렵고 힘든 고난 속에서도 자신을 놓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이다.
순수하다는 것은 세상 속에 있어도 때 묻지 않는 사람들이다. 설사 자신의 안일함에 때가 묻었을지언정 다시 바르게 일어서는 오뚝이 같은 사람들이다.
가장 최악의 시간을 지나 온 사람이자 죽을 만큼 힘든 삶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진흙 속의 연꽃처럼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착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삶 뒤에는 단단하게 자신을 훈련시킨 시간이 존재한다.
밥 한 숟가락을 먹더라도 그 깊이와 고마움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시선은 내 안을 중심으로 타인과 연결된다.
그 연결은 말보다 마음으로 통하는 진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내 안의 기운이 막히거나 내 선입견과 고정관념으로 막혀있는 사람은 나를 전달하는 방식이 서툴고 경직되어 있어 타인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소통이 안되면 우선 나를 바라봐야 한다.
내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나의 오래된 무의식적 행동은 없는지. 그로 인해 타인의 마음을 상처 나게 했는지 먼저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 내가 발전할 수 있고 내 감정의 에너지를 타인에게 쏟느라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치고 살지 않게 된다.
사실 빠르게 급변하는 사회에서 나는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다.
여기저기서 빼앗긴 에너지로 인해 감정을 소비한 대가와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쉽게 잊히고 쉽게 외면해 버리려고 한다.
지긋이 나를 품는 시간, 나의 모습을 바라보려는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이자 가능성이다.
대부분의 소통은 내 안의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내게 무엇이 막히고 있는지 찾아보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 모든 여행의 종착지는 나를 찾는 과정이다. 이 마지막 역은 나비가 알에서 탈피하듯이 내 오래 묵은 습관을 깨부수는 것이자 무의식의 의식화 과정이며 깨달음의 여정임을 내가 자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매일이 새로 태어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는 반드시 그 모든 업장으로부터 벗어날 것이다.
해방이자 스스로 자유를 택한 것이다.
그는 결국 스스로 길이 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