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꺼내는 이야기
이혼한지 7~8년, 두 번째 암 수술 후 7~8년이 지났다.
그 해 나는 인생에서 두건의 커다란 위기를 지나고 있었다.
건강이 무너지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들,
이혼의 과정에서 내 것이라고 할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아야 했던 시간들은 나에게도 고통이었다.
연고도 없는 이곳에 나만 홀로 덩그러니 있게 된다는 불안감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우울증과 암 수술과 이혼의 위기를 건너면서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 어떤 것을 버려야 하는지 절망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다.
삶이 의미를 찾지 못하던 날 밤
생각조차 텅 비어진 공간
무덤덤한 시선처리와 적막이 흐르던 수많은 밤들이 지나가고 나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나를 잃고 나면 아무것도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다 무너진 잔재 속에서도 절대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
나는 몸을 먼저 세우기로 다짐했다.
천천히 먹고, 천천히 걷고, 천천히 하루를 보낼 것
마음을 놓고, 생각은 버리고, 조용히 하루를 맞이할 것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자 내 거처를 아이들과 멀지 않은 곳으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섰다.
첫 번째 암 수술이 있던 날 나는 내 안위보다 더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가족과 내 아이들의 미래였다. 내가 다시 살기로 마음먹은 것도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였다.
모든 게 내 위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던 그날, 내가 놓친 것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나는 아직도 아이들 곁에 따로 또 같이 살고 있다.
다 엉망인 채로 다 그럴 이유가 있다는 막연한 이유로 나는 그들과 함께 각자의 삶에 맞는 방식을 선택했다. 분리되는 동안 전 남편과 여전히 불협화음은 지속됐다.
아이들 양육 문제, 양육비 문제, 아이들 거처 문제 등으로 서로가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오직 내 말만 내 감정만 꺼내기 바빴다.
"ㅇㅇ씨 이젠 남인데 정중하게 말해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이전의 당신 와이프가 아니니 절대 예의를 지키세요!"
사는 동안 써보지 않았던 존댓말을 하지 시작했고
다툼이 커지면 대화를 중단하고 전화를 내 쪽에서 먼저 끊었다.
이혼의 시작은 상대의 유책으로 인한 가정파탄이지만 돌아보면 사는 과정 내내 나에게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었다. 우린 서로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면서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외면했다.
이혼 후 얼마 안되 상대는 다른 여자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씁쓸했다.
20여 년간의 예후가 고작 이것밖에 안되었던 것인가...
나는 여전히 그의 집과 불과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아이들도 각자 선택한 곳에 마음을 잡아나갔다. 내 걱정도 걱정이지만 아이들 걱정이 컸다.
사춘기가 되면서 하나 둘 터져 나오는 불안정한 모습들을 겪어내야 했다. 내부적으로도 힘들었을 아이들의 마음은 곧 외부의 모습에 그대로 투영됐다.
받아들여야지, 그때 후회할 거라고 말했던 나의 이야기가 현실로 옮겨지면서 심적으로도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여기 내가 그들이 나아가는 방향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의 위안이 된다.
그렇게 서로의 궤도를 돌면서 각자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시간들을 건너가고 있다.
상대방도 다시 제자리를 찾아왔다.
집 나간 정신이 제자리를 찾아 오자 아이들에게도 평화가 찾아왔다.
아빠의 자리가 엄마의 자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자리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다 클 때까지는 절대 벗어나지 않겠다는 그날의 선택은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첫 번째 건강을 회복하는데 집중한 것에 대해 나에게 칭찬한다.
두 번째 이혼 후 가까운 거리에 함께 있기로 선택한 나의 다짐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이혼은 이혼이고 이혼 후 소통하고 연락하며 지낸 것도 잘한일이다.
우린 더없이 소중한 이웃이 됐다. 이젠 도움을 요청해도 될 만큼 서로의 거리를 잘 지켜주고 있다.
그도 아프지 말고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서야 마음이 홀가분하다.
이혼은 결혼보다 더 오래 고민하고 심사숙고해야 한다.
어떤 일들보다 더 많은 번뇌와 고통과 책임이 따른다.
자책하는 시간보다 성장하는 시간으로 방향을 틀고 우선 자신부터 하나하나 다시 바로잡아 나가다 보면 언젠가 그 의미가 전해지는 날이 온다.
그 수많은 시간들이 조용히 나를 성장시키는 소중한 시간이다.
잘 지나 온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애썼고 고생했다는 위로와 칭찬의 말을 건네고 싶다.
정말 고맙다.
당신에게도
또 나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