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치를 알아보는 눈
이혼은 단순히 어느 하루에 일어난 마음이 아니다.
오래된 마음이 쌓이고 굳어진 상처의 결말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나에 대해 왜 이해를 못 하느냐는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의 결론이다.
나 역시 이혼할 결심을 한 것이 어느 날 갑자기는 아니었다.
나는 나를 몰랐고 나를 모르니 상대방의 마음 또한 헤아릴 수 없었다.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었고 그 자신의 미숙함과 불안, 걱정은 타인의 모습 속에 낱낱이 비춰지고 있었다.
이혼에 대한 결심이 상대의 외도에 의한 것이라 해도 결혼을 유지할 것인지 파혼할 것인지는 나의 몫이었다.
나는 이 결혼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아이들의 문제 외에도 건강상의 문제가 겹친 나에게 상대의 결정적인 잘못을 덮어두고 살아갈 만큼 나에게 그 어떤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살면서 상대의 모습을 보며 그날의 문제를 단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을 거라는 자신이 없었다.
매일 얼굴을 바라보아야 하고 매일 대화를 나누면서 기억될 그날의 상처가 또 다른 실망과 상처를 불러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이혼의 결심은 나와 상대의 미래가치를 보는 일일 것이다. 나는 살면서 이 일로 상대를 괴롭히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봤을 때 나는 부족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용서는 쉽지 않았다. 나의 미숙했던 지난날들에 대한 용서와 마찬가지로 상대의 과거를 이해하며 살기엔 내 그릇이 너무 작고 부족했다.
매일매일을 기쁘게는 살지 못해도 적어도 상처를 긁고 끄집어내지 않아야 하는데 그 당시로서의 나는 삶이 전부 무의미하고 무너지는 것 같은 고통과 통증 같은 거였다.
나는 이혼을 결심했다. 그의 잘못이 아닌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불안정한 마음이 더 컸다.
남편의 사고로 이어진 경제적 부담감도 컸지만 사실 더 컸던 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내 불안한 마음이 더 컸다. 지금의 나는 상대 때문이라는 탓을 하고 싶지 않다. 세상 앞에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겁고 불안하기만 했다. 그 마음을 내가 타인에게 인정받고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녹녹지 않았다. 부족한 에너지를 상대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나눌 만큼 그 하루하루 현실이란 것에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다 체력과의 싸움이자 정신력과의 싸움이었다.
나는 세상에 던져진 '나'자신과의 싸움에서 철저히 무너졌다.
그렇게 곱고 예쁘던 나의 20대의 시절도 나는 안간힘을 써야 얻어냈던 현실이 결혼 후에도 이어져야 한다는 게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다정하고 예쁜 말을 우리 가족에게 할 만큼 그 어떤 여유라는 게 내 안에는 없었다.
나는 더 거칠고 투박하고 공격적인 모습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끝을 '이혼'이라는 무리수를 두며 인연을 끝맺어 버린 것이다.
환경이 척박해지니 상대의 마음보다 내 마음을 위로받고 싶은 것이 더 컸다. 지금 이 순간 가장 힘든 사람이 내 가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원인이 상대방에게만 있다며 다그쳤던 시간들이 쌓였다.
나는 이혼의 유책이 오직 상대방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렇게 모든 결말을 파국적으로 몰아갔던 그 다른 한 사람이 나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땐 그랬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인정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무지함과 어리숙함, 그날의 부족했던 시간들...
갈등이 생겼을 때 그것을 다루는 능력이 부족했다.
한쪽은 일방적인 회피를 방어수단으로 장착했다면 나는 지나친 개입을 내 무기로 들고 나왔다.
쫓고 쫓기는 관계, 무시와 비난이 난무한 갈등구조, 가족이라는 이유로 쉽게 선을 넘어가는 상황들.. 무례함과 불성실함의 그릇된 행동들..
각자의 세계에서 정답만을 요구하는 반복된 갈등구조
우리는 서로의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기술을 알지 못했다.
가장 힘든 순간에도 반드시 내 사람,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챙겨야 했음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글로써 삶을 이해하고 모든 어설픈 것들을 쓰기 시작했다.
보다 성숙했으면 좋겠고 보다 잘 살기를 원한다.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과 내 가족이었던 사람도...
그리고 지금을 살고 있는 '나'라는 또 다른 우리들에게도
사실 '이혼할 결심'이 '잘 살 결심'으로 변화되는 것은 단 하나의 나를 잘 살펴보는 일이 전부인 것 같다.
'너만 잘하면 돼'가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바라보는 것이 더 중요한 삶의 기술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도, 글을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심하고 고뇌하는 일
그렇게 내가 무르익고 성숙되어 가는 과정 속에 삶이 더 희망적이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이혼을 하고 나서 인생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이혼의 시간은 나를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들이 원망이 아닌 감사의 시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결혼보다 이혼 후 더 노력해야 할 것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혼을 찬성하는 주의는 아니다.
혼자든 둘이든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서로에게서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어떤 선택이든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지만
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 내 편이 하나 있음은 상당히 귀한 인연임을 서로가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어린 왕자를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건 '기적'이다.'
내가 내 편일 때가 가장 좋은 것이지만 내가 아닌 사람이 내 편이 될 수 있음은 대단한 인연이다.
서로가 서로의 진짜 가치를 알아봐 주길 바란다.
삶의 과정은 그 소소한 가치를 알아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