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날 아침, 나를 찾아온 오래된 두려움과 작은 깨달음
며칠 전부터 마음억기로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이불 속에 파묻혀 늘어지게 잠만 자겠다는 달콤한 계획이 가득했다.
이리저리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현실은 늘 계획과는 다르다.
푹신한 베개 대신, 싸늘한 병원의 공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전 예약해 둔 건강검진 때문이다.
사실, 나는 병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공포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암 진단을 두 번이나 받고 낯선 수술대에 올랐던 그날,
그리고 몸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닥쳐온 이혼과 자연재해까지.
마치 하늘과 땅,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연타를 얻어맞은 듯했다.
그때부터다.
세상살이가 '녹록치 않다'는 뼈저린 감각으로 다가온 이유...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한 후,
내 자존감과 자신감은 한 조각의 유리처럼 바닥에 흩어져 버린 것만 같았다.
작은 소리에도 움츠러들고,
코너에 몰린 사람처럼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 자신이 버거울 때도 많았다.
오늘의 검진도 그 트라우마를 다시 일깨웠다.
갑상선 초음파를 보는데, 의사의 미간이 좁아지며 구멍의 직경을 재는 손놀임이 공포로 느껴졌다.
'또 무엇이 생성된건가....'
문득, 이미 잘라낸 오른쪽 갑상선에 이어 이번에는 왼쪽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심장을 짓눌렀다. 찹찹한 마음으로 검진센터를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발걸음은 마치 돌덩이를 매단 것처럼 이전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이럴 때면 나를 무조건적으로 안아줄 든든한 언덕, 그 따뜻한 기댈 곳이 간절해진다.
아버지, 어머니...
아니라면 누구라도 좋겠다는 유치한 바람까지
하지만 정신을 차리면 늘 그랬듯, 오늘도 나는 혼자라는 현실만 남아있다.
그렇게 원했던 가족도, 그 무엇도 내게 주어진 것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없이 씁쓸했다.
그 씁쓸함 뒤로 여지없이 올라오는 내면의 목소리..
"그래, 난 어른이잖아! 혼자서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어! 아직 아무것도 결정난 것은 없잖아!"
억지로 고개를 흔들어 현실을 부정하려 애썼지만,
마음의 무게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때, 내 인생의 유일한 벗.
8년 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혜롭고 현명하신 분 하나만 제게 보내달라'고
목 놓아 울었던 그 간절함이 닿아 인연을 맺게 된 나의 명상 스승님이 생각났다.
그날 이후로 명상은 밥 먹듯이, 숨 쉬듯이 하였고 그 삶은 일상이 되었다.
스승님은 마치 내 부모님이 보내주신 수호신 같았다.
"힘들면 기대도 된다. 괜찮다"는 그분의 말씀이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되었다.
마침 걸려온 전화에 울먹울먹 목소리를 삼켰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스승님은 농담처럼 진담처럼 말씀하셨다.
"무엇이 그리 걱정이냐. 암은 누구나 다 가지고 살고 있는 내 것이라고 치자.
치매보다 훨씬 괜찮은 녀석 아니냐.
아프면 병원 가고, 수술하라면 수술하면 된다.
마음 편하게 훌훌 털어버리고 지내라."
맞는 말씀이다.
당장 죽어 나가는 것도 아니고, 삶의 존엄을 잃어버리는 치매보다는 훨씬 아름다운 투병일 수 있다.
그 말씀에 순간, 꽉 쥐고 있던 주먹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나니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게 뭐 별거라고!'
지친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결국 나 자신과,
고통 속에서 찾아낸 작은 지혜였다.
오늘 휴가는 비록 병원에서 시작했지만,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가장 귀한 쉼을 얻은 하루가 되었다.
글을 쓰면서 문득 세상의 이름 모를 이들의 고통과 그것을 감내하며 사는 이들이 생각났다.
살아 오느라 돌아보지 못했던 나의 이웃들
마음의 여유없이 지나온 시간들에 돌아 보지 못했던 주변 사람들
그렇게 단 한번이라도 응원한다! 잘 살아보자! 조차도 내겐 무거움이자 혹시나 위로보단 심적 부담이 될까봐 조심스럽던 나였음에도 오늘은 힘내보자! 잘 살아보자!라는 응원을 보내고 싶다.
잘 살아보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