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안 할 때도 머릿속에 색풍선이 떠다닐 지경에 이르렀다. 일 끝나고 어서 집에 가서 게임해야지, 이렇게 살다 보니 별 고민 없이 하루하루가 참 잘 지나갔다. 아주 좋았다. 어차피 우리가 하는 고민의 대다수가 발생하지 않는 다는데 난 그동안 왜 고민한 거야 싶었다.
그러다 며칠 전, 이메일을 확인하는데 교보문고에서 메일이 와있었다. 9월분 전자책 정산을 요구하는 메일이. 정산? 내 눈이 확 커졌다. 정말 그 교보문고에서 수익이 발생했다고? 교보문고 파트너 시스템에서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 전에 어디선가 이 대여(B2B, B2C)가 생각보다 쏠쏠하다고 읽은 기억이 있다. '쏠쏠'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일단 훈풍이 부는 건 확실하네. 계산서 발행 마감이 10일이라 이메일을 확인함과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정말 번쩍 들었다. 동시에 속으로 나 자신에게 물었다. 너 뭐 하니? 일 벌여놓고 손 놓고 뭐 하고 있냐고. 뭐 하긴요. 글 쓰고 싶은데 좌절해서 좀 놀았어요. 그리고 40대 아줌마, 생각보다 고민이 많답니다. 그런 저런 이유로 번아웃 좀 겪었다고요.
그 길로 도서관에 갔다. 가서 11권의 책을 빌렸다. 집에 와서 6학년 딸에게 조창인 작가의 '가시고기'를 슬쩍 권했다. 가시고기라. 난 나머지 열 권 중에서 장치혁 작가의 '팔리는 책쓰기, 망하는 책쓰기'를 골랐다.
"책쓰기는 글쓰기 실력과 별로 상관없어요. 글쓰기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뭘까요? 바로 자기 전문성이죠. 사실은 이게 진짜 핵심입니다. 자기가 전문적으로 얘기할 내용이 있느냐가 더 중요한 관건이라는 말씀입니다. 표현력이 시인처럼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요즘에는 글솜씨라는 것은 오십 보 백보로 다들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요."
-55p, 장치혁(레오짱), <팔리는 책쓰기, 망하는 책쓰기_ 기획과 마인드 편>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우리 삶에 진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소설이 아직 나에게 역부족이라면(영원히 역부족 일수도) 가능한 것부터 하면 되겠지. 중요한 건 하는 거니까. 이 책에서 발견한 표어가 있다.
"I'll Do Me, You Do You."
문득 참 흥미로운 세상을 살고 있다고 느꼈다. '재미있네'라는 생각이 드니 부담도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쓰고 싶어졌다. 글로 좌절하고 글로 위로받고 글로 용기를 낸다.
번아웃은 이렇게 끝난 것 같지만 여전히 게임은 한다.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몇 판만 하자고 마음속으로 정한다는 점.
물론, 잘 지켜지진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