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나 Oct 06. 2023

한 달간의 버나웃 1



한 달 정도 놀았다. 게임을 거의 안 하는데 한 달 동안 엄청 했다. 포키게임 사이트에서 버블슈터를 미친 듯했는데 내 최고 점수는 7만 점이다. 당구처럼 벽에다 대고 쏴서 정확히 맞추면 즐거움은 배가 된다. 게임 중간중간 광고가 나온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낮에 하면 광고가 적은 느낌이다. 한번 시작하면 한두 시간은 순삭이다. 평소에도 앉는 자세가 좋은 편은 아닌데 게임하면서 점점 더 자세가 나빠졌는지 허리에 무리가 왔다. 추석 때 시가에 내려갔다. 우린 항상 도착하면 손도 안 씻고 바로 어른들께 절을 한다. 큰절을. 허리가 아파 이번에 나는 빠졌다. 지금까지 약 17년을 꼬박 만나 뵐 때마다 큰절을 해왔다. 아마 이 경력이 반영되어 빠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지난달 중순에 어떤 소설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떨어질 줄 알고 있었다. 최근에 연달아 몇 개 떨어지니 떨어짐 자체는 익숙하다. 그렇담 뭐가 문제냐 하니 '내가 과연 글을 쓸 수 있겠는가'에 대한 충격을 받았다. 일단 공모전의 심사평을 보면(물론 내 글에 대한 심사평은 아니다)



"소설의 기본은 문장입니다. 문학은 '언어로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장력만으로 소설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문장 안에 세상에 전하고 싶은 말이 들어있어야 하며, 그게 곧 작가의 메시지이자 주제가 됩니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SF적 상상력을 뽐내는 글에 호감이 갔으나 종국에 '왜 썼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지?' 의문이 드는 작품 앞에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글이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 글 역시 마찬가지겠지. 내가 쓴  소설에는 주제가 없었다. 아니 어떻게 글에 주제가 없을 수 있지? 분명 쓸 때는 신나고 재미있게 쓴 기억이 있는데 글에 알맹이가 없다. 눈 씻고 찾아봐도 정말 없다.



심사평을 계속 보자면   



"소설은 '이야기 있음'을 전제로 하기에(물론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왜 필요한지, 우리의 삶과 생활, 사유와 질문 등을 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독자에게 전할 '말'이 없다면 한낱 수다에 불과하겠죠. 다수의 작품을 읽으며 다른 이야기 장르와는 다른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절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깨달았다. 내 소설에는 메시지가 없는데(사실 메시지를 크게 고민하지도 않았다) 내가 고의로 그런 건 아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해 보니 난 그런 생각하는 훈련, 이 세상을 다각도로 깊이 관찰해서 어떤 결론에 이르는 경험 자체가 거의 없었다. 난 그저 표면적인 현상을 적어내는, 그저 그런 말장난에 불과한 글을 썼구나. 난 깊이 생각할(책 보면서 가장 고민 많이 한 책은 육아책 정도) 능력도 없고, 어떤 주제를 담아낼 그릇은 전혀 아니구나. 무슨 습작하나로 낙방 한번 했다고 땅굴을 파니 인프피 얼굴에 먹칠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정말 이렇게 괴로울 수가 없다.  



 멘붕에 빠져 포키게임만 실컷 하니 제법 즐거운 게 사람들이 왜 게임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그러다 다른 책들은 어떤가 하고 밀리에서 책 한 권을 읽었다. 청소년 소설인데 제목은 '죽이고 싶은 아이'. 소설은 후루룩 읽혔다. 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책을 순식간에 읽어치웠고 그걸 뿌듯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뭘 또 깨달았다. 아, 나는 살면서 책을 이렇게 읽어왔구나. 나는 책의 결말만 알면 '난 이 책을 다 읽었소' 할 사람이다. 등장인물의 고민과 갈등은 내게 그저 소설의 재미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들이 왜 그런 환경에 처했고 선택은 무엇이며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그런 부분을 내가 고민해 본 적이 있던가?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졌다.



예전에 드라마 작법 공부할 때 들은 바에 따르면 '인물'의 캐릭터를 잘 구축해 두면 어떤 상황에서도 대사가 그 인물에 맞게 툭툭 튀어나온다고 했다. 그만큼 캐릭터 구축이 중요하단 말. 이 인물이 어디 살고, 뭘 하고 살았으며 뭘 좋아하고 왜 살고 목표는 뭐고 고민은 뭐고 등등. 하지만 난 소설 속 등장인물뿐 아니라 실존에서도 나 말고 어떤 인물에 대해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걸(있다면 아이들 정도). 그렇게 관심을 둔 적이 없지. 심지어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고 살아왔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생각이 여기까지 오게 되니 나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아니 내가 글을 왜 쓰는지 그 이유도 모를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게임만 했다. 한 달 동안 대차게.

아, 참고로 공모전의 당선작은 없었다.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 책방에 제 책을 등록하려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