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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나 Aug 28. 2024

늦어지는 유학

그리고 '중학생'이라는 복병





2020년 2월, 이제 이 겨울 끝자락만 넘기면 봄이 올 텐데. 봄이 오면 유학 설명회도 열릴 텐데.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것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봄보다 먼저 찾아온 게 있었죠. 코로나. 뉴질랜드는 아주 강력하게 문을 걸어 잠가버렸어요. 섬나라라서 더 그랬겠죠. 여행은 말할 것도 없고 유학도 마찬가지. 유학생이 뉴질랜드를 떠나는 건 가능했을지 몰라도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5월에 예정되었던 유학설명회도 당연히 무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데가 없고 아무도 답해 줄 수 없는. 그렇게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2021년,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코로나는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없었죠. 이제나 저제나 상황이 호전될까, 유학은 대체 언제 가능해질까, 가능해지긴 할까. 저는 조금씩 초조해졌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중1이니까 시간적 여유는 있다 생각했어요. 대신, 마지노선은 중3으로 잡았습니다. 고1 넘어가면 보내지 말자고. 나중에 보니 고등학생 때 유학 와서 학년을 하나씩 낮춰 다니는 친구들이 있긴 있더군요. 그것도 방법은 방법인데 당시에 저는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3~6개월 단기로 보내고 원하면 연장하자 했던 것도 그냥 처음부터 '최소 1년'으로 결심했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다고 판단했어요.




2021년 가을, 일단 가고자 하는 학교에 지원서를 넣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국경이 열리면 유학생이 한꺼번에 몰릴 수 있으니 미리 보내놓자 하는 유학원의 의견이었어요. 저는 아이의 중학교 1학년 1학기 성적표와 자필로 작성한 지원서를 스캔한 다음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정성껏 작성해 보냈지만 정작 다음 해 온라인 수속으로 바뀌어 다시 다 작성했다





그러던 2021년 말, 희소식이 하나 들려왔습니다. 2022년 초부터 3단계에 걸쳐 국경을 개방하겠다는 뉴질랜드 정부의 계획이었죠. 어찌나 반갑던지. 그 신호탄으로 22년 봄에 무려 1,000명의 유학생을 받겠답니다. 대상자는 '대학생' 한정이었지만 그게 어딘가요. 기뻤습니다. 희망이 보였습니다.




아이가 다닐 학교에서도 저희가 보낸 지원서에 대한 회신이 있었습니다. "2022년 중반에 유학생 입국이 재개될 정부 계획이 있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 유학생 등록 업무를 중단한 상태다. 향후 확실해지면 그때 다시 재개하자." 여전히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뉴질랜드 정부에서 발표는 이렇게 했지만 그때 가서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요. 원래 저는 '불확실한' 모든 것을 힘들어합니다. 차분하게 좀 지켜볼 능력이 없는 거죠. 지켜볼 생각도 없고요. 원체 성격이 급해 '할 거면 빨리 하고, 안 할 거면 빨리 안 하고' 늘 그런 식이었죠. 그 덕에 코로나와 아이 유학이 맞물리면서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연히 법륜 스님 말씀을 접하고 많이 찾아서 들었죠. "좋다고 너무 좋아하지 말고, 안 된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라." 이 말씀을 머리에 매일같이 새겼지만 마음이 따라가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더군요.




2022년, 아들은 중2가 되었습니다. 유학은 반은 기다리고 반은 포기한 상태로. 그런데 간혹 저희같이 뉴질랜드만 바라보다가 캐나다나 다른 나라로 방향을 틀었다는 글들이 보이더군요. 우리도 그래볼까 싶었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이제 와서 다른 나라라니. 어느 나라, 어느 학교, 어느 유학원으로 한단 말인가.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소식이 들려올 까 고대하던 중 드디어 몇 년을 기다려온 그 순간이 왔습니다. 아마 2022년 봄 무렵일 거예요. 2022년 하반기에 단기과정으로 컬리지(한국 중2~고3) 유학생을 받는다는 소식이었죠. 2022년에 이렇게 진행되면 2023년부터는 장기유학생을 받을 거라는 구체적 전망이 나왔습니다.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한 뉴질랜드인만큼 발표까지 오래 걸리지만 한번 공표하고 나면 더 이상의 천재지변이 없는 한 약속을 지켜줄 거라 생각했어요.




저희는 2022년이 아닌, 2023년 1학기에 유학을 시작하는 걸로 최종 결정을 내렸습니다. 무려 3년을 기다렸네요. 학년을 하나 내려 보낼까 고민했으나 일단 제학년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1년 사이 원서접수 방법이 바뀌어 온라인으로 다시 접수해야 했습니다. 원서를 내고 건강검진을 받고 비자를 받고. 이 모든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데 문제는 엄마인 저만 신났다는 겁니다. 덩치 크고 느릿느릿, 눈만 꿈벅거리는 황소 한 마리 데리고 다니는 것처럼 아이가 그랬습니다. 그런 아이에게서 문득문득 불안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저는 그냥 밀어붙였어요. 아들도 점점 그 내색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처음 유학 가겠다고 동의했던 5학년 꼬마는 사라지고 중2, 그것도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중2가 나타난 거죠. 학비까지 다 송금한 마당에 아들이 저한테 한마디 던졌습니다.




"저 꼭 가야 돼요?"




친구를, 학교를 너무 좋아하던 아이. 지난 2년간의 지겨운 온라인 수업이 끝나고 이제 드디어 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내년에 중3이 되면 수학여행도 가고 졸업사진도 찍고 할 텐데. 그런 순간들을 자신은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나 봅니다. 아이가 흔들리니 안 그래도 옆에서 걱정하던 양쪽 부모님들도 하마디 씩 거드시더군요. "애가 싫다는 데 꼭 그렇게 보내야겠니?", "너 그러다 애 잘못되면 어떻게 책임지려 그래?". 부모님이 들으면 서운해하시겠지만 걱정과 가스라이팅은 교묘하게 잘 섞여있죠. 이런 말을 듣는 제 맘도 편하진 않았습니다. 잘못되면 같이 망하는 거 아닌가요. 이렇게 말하면 보나 마나 이번엔 "제정신이야?'라는 말을 들을 겁니다.





하지만 전 어떤 믿음이 있었습니다. 느긋하고 약간 뻔뻔한 아이,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내는 아이,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고 남을 웃기는 걸 좋아하는 활발한 아이. 이런 성격이라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분명히 가서 잘 적응할 거라는 믿음. 공부를 뛰어나게 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가자마자 그런 일은 말도 안 되거니와 여기서도 그러지 않는데 거기 간다고 갑자기 그렇게 될 리 가요. 하지만 적어도 본인이 고민해서 직접 고른 과목들은 성실하게 잘해나갈 거라고 생각했죠.      





"1년만 하고 정 힘들면 언제든지 돌아와도 돼. 그래도 기회인데 아깝잖아."

제가 처음부터 이렇게 곱게 말하진 않았죠. 의욕 없는 아들한테 세게 나가봤자 될 일도 안 되겠더라고요. 어르고 달래는 수밖에. 한 번쯤은 그만두고 싶으면 그러라고 말한 적도 있지만 다시 달랬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잘한 일인가 싶기도 한데, 잘한 일과 못한 일 딱 그렇게 두 가지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도통 마음을 정하지 못하던 아들이 웬일인지 어느 순간 달라졌습니다. 일단 가보기로 마음을 먹은겁니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진 모양이에요. 맨 죽상만 하고 들어앉아 있던 애가 다시 활기를 되찾으니 저는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습니다. 당시엔 예상 못했지만 아마 아들은 그때 이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일단 간다. 그리고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1년 후에 반드시 돌아온다.'






아들은 2024년 Year11,

여전히 뉴질랜드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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