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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나 Sep 02. 2024

첫날밤의 뉴질랜드





2023년 1월 25일. 아들이 떠났다. 혹시라도 얘가 울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다 계셔서 의젓했던 걸까. 웃으며 떠나 줬다. 출국장으로 들어설 때도 한 번에 들어가지 않고 잠시 모습을 보여줬다 안 보여줬다 하며 우리를 웃겨주고 떠났다. 아들이 떠나고 난 뒤 난 그 동영상을 닳도록 봤다. 웃고 있지만 속이 어떨지 훤히 짐작 가는 아들. 우리, 아니 나는 과연 잘한 걸까? 너를 보내는 게 말이야. 난 약간 두려웠다. 과연 아이 앞에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실시간으로 항공편을 추적할 수 있는 세상. 내 마음은 아들이 오클랜드를 거쳐 크라이스트처치(치치)에 도착할 때까지 뜬 눈으로 항공편을 추적하며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새벽 무렵 어느새 잠이 들었다. 몇 시 정도 되었을까.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클랜드에 도착한 아이는 2시간 30분 정도의 환승시간이 있었지만 시간을 맞추지 못해 다음 비행기를 놓쳤단다. 엄청나게 길었다는 짐검사의 줄, 국제선과 국내선 터미널 간의 이동, 이 모든 걸 혼자 그리고 처음 해야 했기에 2시간 30분은 무리였나 보다. 그래도 아들이 공항 직원 누군가에게 사정을 말했단다. 그 직원누나(?)가 티켓 재발급도 도와주고,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하는 셔틀도 함께 기다려 줬단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내 속에서 감사하단 소리가 절로 나왔다.





크라이스트처치 도착





무사히 치치에 도착한 아들. 서울에서 한번 만났던 실장님이 마중을 나왔다. 엄마들의 애타는 마음을 잘 아는 실장님은 공항 밖에서 영통을 걸어주셨다. 반가운 아들의 얼굴도 얼굴이지만 그 뒤로 보이는 청명한 뉴질랜드의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곳이구나 그곳은.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기까지는 한 5일 정도 남았다. 아들은 그동안 머물 홈스테이 집으로 실장님과 이동했다. 그곳에서 낮시간을 보낸 후 드디어 맞은 뉴질랜드의 첫날밤. 방에 혼자 있게 된 아들은 영통을 걸어왔다. 인적 드문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인데 주택가 어느 집, 본채 옆의 별채, 그리고 그 공간에 혼자 있다. 화면으로 보니 며칠만 있을 거라 이것저것 다 꺼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아들은 마치 서울의 자기 방을 떠올리듯 이건 여기 이건 저기 하며 비어있던 공간에 사람의 흔적을 채워나갔다. 그렇게 짐정리를 하며 마음의 정리라도 하듯이.





뉴질랜드는 인터넷 환경이 한국과 다르다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웬걸, 이건 뭐 너무나 선명했다. 목소리도 화면도. 4시간 느린 한국은 이제 저녁식사 시간. 본인을 뺀 나머지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는 모습을 보는 아들. 아마 자기 혼자 떨어져 나간 기분을 느꼈겠지. 아들 얼굴에 그나마 있던 기운도 빠져 보인다. 아니 이럴 때 인터넷이라도 알아서 좀 끊겨주면 좀 좋아.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은 저녁식사가, 뉴질랜드는 짐정리가 끝났다. 아들은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는 조금 더 영통을 계속했다. 거의 아들 얼굴이 화면에 꽉 찼다. 만감이 교차했다. 분명 언젠가는 우리 둘 다 오늘밤을 떠올리며 웃을 날이 오겠지. 과연 그날은 언제쯤 올까, 오긴 올까. 그날 밤, 아들은 아마 한국에서 하던 대로 스탠드 불을 켠 채 잠이 들었으리라. 뉴질랜드는 전기값이 비싸다는데 켜고 자도 될까 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안 하면 아들에게 너무 가혹하겠지.





지금이야 그저 뉴질랜드에 도착한 첫 날로 기억될 뿐이지만, 2023년 1월 26일의 그 밤은 아들에게 아주 적막하고 새까만, 차라리 꿈이길 바랐던 그런 밤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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