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1의 시작을 이틀 정도 앞두고 아들이 기숙사로 들어갔다. Year9과 Year10, 두 개 학년이 사용한다는 이 건물은 총 3층으로 2, 3층에 각각 방이 두 개씩 있다. 같은 학년끼리 한 층씩 사용하는데 방 타입은 12인실과 18인실로 두 종류. 참고로 고등학생(Year11~13)용 기숙사 건물은 따로 두 동이 있는데 거기는 전부 1~2인실이란다. 아들은 Year10이지만 Year9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학교 측의 배려인지 모르겠지만 18인실의 한쪽 구석에 배치되었고 바로 위, 옆으로는 다른 동갑내기 유학생 친구들이 있었다. 이때 처음 위아래로 한 침대를 사용한 중국인 유학생 J와는 그 후 1년 내내 위아래로 붙어 다녔고, 성격이 잘 맞아 현재까지도 제일 친한 친구로 지낸다.
뉴질랜드는 1년에 총 네 번의 학기가 있는데 매 학기마다 방과 침대위치가 바뀔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는 하는데 무조건 바꾸는 건 아니고 기숙사 선생님이 판단해서 적절하게 배치하는 걸로 보인다. 아들은 2학기부터는 12인실의 더 한적한 구석자리로 옮겨졌다. 물론 유학생 친구들도 함께. 유학생 중 한 아이는 3학기 정도 되었을까, 그쯤 제 학년을 찾아 Year10 기숙사 방으로 옮겨갔다. 아무래도 한국 나이로 중3인데 중2들과 쓰려니 이래저래 시달렸던 걸까. 아들과 J는 옮기지 않고 한 살 어린 친구들과 일 년을 보냈다.
18인실 방에 유학생은 세명, 나머지 열다섯 명은 모두 현지 아이들이었다. 이 현지 아이들은 대부분 금요일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갔다 일요일 오후에 돌아온다. 아들은 주말을 좋아했다. 주중에 가끔 기숙사 방에서 아들과 영통을 하면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장난이 아니었다. Year9이면 우리나라 중2 아닌가. 그것도 한 방에 중 2 남학생만 열몇 명을 모아뒀으니 조용한 게 이상한 일. 고래고래 소리 지르거나 노래하는 아이, 뛰어다니는 아이, 몸싸움하는 아이, 게임하며 소리치는 아이 등 잠들기 전까지 조용한 순간이라고는 1초도 없어 보였다. 그러니 그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주말을 아들은 늘 기다렸다.
기숙사의 하루는 일정했다. 저녁 먹고 자유시간을 가지다 9시경에 1층에서 선생님과 모두 모인다. 간단한 대화를 나눈 뒤 각자 핸드폰과 노트북을 정해진 장소에 두고 방으로 돌아간다. 곧 취침시간이 되고 방에 불은 꺼지지만 개인 침대 조명은 사용이 가능했다. 아들은 한동안 소등 후 침대에서 일기를 썼다. 한국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선물한 수첩을 가져갔는데 거기에 한 줄 한 줄 적어나갔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한식에 대한 그리움, 더 나아가 본인이 자고 자란 동네의 모든 것을 그리워했다. 일기는 한 4개월 정도 계속 쓴 걸로 안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하지만 아들은 어느 순간, 더 이상 일기를 쓰지 않았다.
아들의 침대 옆에 바로 창문이 있다. 아들이 창문을 닫아두면 말없이 열고 지나가는 아이, 아들이 커튼을 걷어 두면 맘대로 커튼을 치고 가는 아이 등 별 친구들이 다 있었다. 이 아이들은 심심해서 그럴까, 장난으로 그럴까, 짓궂어서 그럴까.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진 않다. 그리고 더 당연한 말이지만 위에서 말한 정도의 수준, 그 정도의 일만 일어났던 것도 아니다. 예상했던 일이었고 아이를 도와줄 사람들도 있었다. 유학원 실장님께 말하면 학교에 전달해 주셨고, 내용을 전달받은 기숙사 관리선생님이 짓궂은 아이들에게 경고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그럴 순 없는 일. 내가 모르고 지나간 순간도, 누군가 아이를 도와주지 못한 순간도 많았을 터. 결국 혼자 극복해야 했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도 강해졌고, 또 좋은 친구들이 서서히 늘어가면서 힘을 얻고 여유를 찾아간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면 가슴 졸였던 그날들도
우리는 웃으며 말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