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의 빈자리

by 이유나




92CD9CBF-EAF2-4954-8FFA-15FF21730813.jpeg 학교에서 보낸 준비물 리스트





첫 애 때는 뭘 준비해서 보냈었더라. 그냥 옷가지랑 필기도구 정도 보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 딸은 조금 더 준비해 갔다. 사실 그래봤자 책가방, 계산기 정도지만. 책가방은 한국에서 메던 게 있지만 새로 샀다. 잔스포츠. 나도 어릴 때 쓰던 거라 이게 대체 언제 적 잔스포츠인가 싶긴 하다. 아들 말로는 거기는 거의 대부분 나이키 같은 스포츠 브랜드를 메는데 잔스포츠도 있긴 있단다. 남학교 얘기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여학교라 해도 여기 한국에서 쓰던 미국 대학 이름이 크게 박힌 가방을 메는 학생은 전무할 듯하여 일단 구입.

카시오 공학용 계산기는 쿠팡에서 약 3만 원에 구매. 2년 전 아들이 현지에서 똑같은 계산기를 구매했는데 당시 약 45불이었다. 한국돈으로 한 38,000원? 크게 차이는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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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값이 등록금에 포함되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는 불포함이다. 아들의 경우는 첫 해는 1,000불, 두 번째 해부터는 매년 500불씩 등록금에 포함해 내고 있다. 그리고 뭔가 필요한 게 있을 때마다 수시로 유니폼샵에서 구매하는데 졸업할 때 남은 돈은 환불가능. 한 2년 차까지는 종종 들러서 운동복이다 티셔츠다 구입했는데 최근엔 뜸하다. 아, 양말은 아주 꾸준히 사고 있다. 근데 양말은 늘 몇 짝씩 계속 사라진다는 점이 함정.

딸이 여름 교복인 작은 넥타이가 달린 원피스 입은 사진을 보내줬다. 여름이긴 하나 아침에 등교할 때는 쌀쌀해서 원피스 위에 재킷을 입고 간단다. 물론 낮엔 너무 덥다고. 처음 보는 교복에 생전 안 신던 구두까지 신었다고 생각하니 어찌나 직접 가서 보고 싶은지. 딸이라 그럴까, 막내라 그럴까. 정말 너무 보고 싶다.





교복에 구두도 장만했고 각종 준비물도 다 마련했지만 어떻게 보면 딸에게 가장 필요한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한국 먹거리! 김치찌개를 사랑하고 주 1회는 기본으로 마라탕을 먹어줘야 하는 아이인데 맛은 있지만 매운 흔적이라고는 1도 없는 현지 음식에 벌써 살짝 고달픈 모양이다. 주말에 준비물 사러 나간 김에 한인마트에 들러 비상식량을 당장 사 왔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님. 여기는 컵누들이 없으니 컵누들 마라탕맛과 우동맛을 보내달란다. 포장용기를 뜯어 면과 스프만 담아 보내면 더 많이 보낼 텐데 인터넷 찾아보니 포장용기를 뜯지 말고 보내야 한단다. 부디 오뚜기가 뉴질랜드에서도 컵누들을 팔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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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도착 다음 날부터 내리 3일간은 유학생 오리엔테이션, 오늘 월요일은 수업은 없었고 다른 행사가 있었단다. 이제 정식 첫 수업은 내일부터. 어제는 밤 11시에 잤는데 오늘은 좀 더 빨리 자야겠다고 하는 아이를 보니 대견하긴 한데 군기가 제대로 든 거 같다.





딸은 셔틀을 타고 다니기 때문에 집에서 제법 빨리 나간다. 한국에서 학교 간다고 나가는 시간보다 무려 1시간 이상 먼저 집에서 나가는 셈이니 일찍 안 자고는 어렵겠지. 하루아침에 달라진 그녀의 생활리듬. 덕분에 한국에서 나도 일찍 잠들고 있다. 항상 애들 눕는 거 보고 자느라 한 두시 심하면 세시 가까이 되기 일쑤였는데 아이들이 없는 지금은 열시만 되도 한밤중 같다. 집이 적막해서 더 그런 걸까. 게다가 언제나 음악을 틀어 놓았던 딸이 없으니 음악도 사라졌다. 문득 집에 음악이 없구나 싶어 딸이 제일 좋아하는 백예린의 노래를 틀었다. 딸과 함께 수십 수백 번 즐겨 듣던 노래인데 오늘은 아무 감흥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