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주말에 친정을 다녀왔다. 나의 어린 시절 성장기를 보냈던 집은 이미 허물어져 버린 지 오래다. 내 집 하나 마련하는 게 평생소원이시던 엄마는 한 푼 두 푼 모으신 돈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셨다. 그리 애지중지하는 엄마의 보금자리 아파트가 나에겐 한없이 낯설다. 내가 출가하고 난 후 마련한 집이라 내겐 추억이 없다. 내가 살던 옛집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집이 있던 자리엔 공사 중이란 팻말만이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엄마에게 드라이브를 시켜 준다는 핑계로 나는 마음에 담아 두었던 짐 하나를 들어내려 했다. 몇 년 전 뇌졸중과 고관절 수술로 편마비가 오신 엄마는 집에만 계신 게 갑갑하신지 바깥바람을 쐬고 싶다 하셨다. 어쩜 나의 계속된 잔소리에 마지못해 나선 걸음이었어도 표정만큼은 아이처럼 신나 하셨다. 기장 바닷가를 목적지에 두고 한참을 달리던 차는 주말이라 주차장이 되어 버린 도로 위에 한참을 머물다 해운대쯤 지나고 있을 때였다.
“저기 점빵들이 천지로 있었는데 전부 아파트가 지어졌네. 아이고야 여가 이리 많이 바뀌어가 하나도 모르겠네” 부산의 중심지 해운대가 부의 상징으로 탈바꿈한 지 오래인데 엄마의 세월을 비껴간 모양이다. 엄마는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 오래전 기억 속 해운대의 모습을 찾고 있었다.
“엄마, 엄마는 스트레스받으면 어떻게 풀고 살았어?”
“야가 머라카노, 스트레스받을 시간이 어디 있고 살았니. 아버지 돌아가시고 너거 키운다고 밤 낮으로 일하고 주말에도 누가 빵꾸내면 수당 더 받을라꼬 일하고 아플 틈도 없었는데 스트레스는 무슨. 묵고 살기도 바빴는데. 와? 사는 기 힘드나?” 어린 딸 둘 키우는 홀아비 집에 재처로 시집와 아버지마저 일찍 돌아가시고 아이 넷을 홀로 키우시고 살아오신 엄마다. 그 힘들고 험난했던 세월을 감히 내가 읊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오늘 나는 마음에 품고 있던 숙제을 풀어 내고 싶었다. 가슴에 담은 응어리를 풀어야 숨을 쉬고 살아갈 것 같았다. ‘엄마.. 왜 만날 나야. 엄마가 배 아파 낳은 자식들은 병원비는 고사하고 한 번을 들여다보지 않는데. 병원비에 간병, 요양병원비에 퇴원하고도 여전히 반찬 해다 나르고.. 여지껏 살면서 엄마를 챙기고 산 시간이 얼만데 알아 주는 이도 없고, 나 이거 언제까지 하고 살아야 돼?
나도 숨쉬기가 힘들 때가 있어 엄마.. 일하다 전화기 울리면 심장부터 떨려 엄만 모르지?’ 학비 한 번을 제때 못해 줬다며 시집간 후로 연락을 끊어 버린 언니도 원망스러웠다. 돈을 감춰두고 못해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의 속도 모른체 계속해서 혼잣말을 읊조리는 엄마 모습에 괜스레 심술이 났다. 밀리는 차도 짜증났다. 집 근처 갈 걸 먼 길 나선 후회도 했다.
막힌 도로를 뚫고 기장 터널을 지나자 “저가 아부지 거래처 있던 자리 아이가 너거 아부지 회사 부도나고 부산 와가 아부지 죽고 외상 돈 받으러 갔었는데 묵고 죽을래도 없다 캐서 인식이(당시 2살이던 막내) 들쳐 업고 주저앉아 울었더니만 공장에 쓰던 공구 몇 개 챙기 주데. 그거라도 팔아서 보태쓰라꼬” “아이고야 세월 참 빠르데이 그때는 딱 죽겠더만”
살아오면서 한 번쯤은 힘들다 투정 부리고 내 힘듦을 기대고, 속에 담아 둔 이야기를 털어 내고 싶었는데 엄마의 소설 같은 넋두리에 가슴이 미어왔다. 쉼 없이 살아온 엄마 인생이 가여워 동정하는 마음이 들킬세라 눈물도 삼켜야 했다. 내 배 아파 나은 아들 둘도 눈물 콧물 빼가면서 키우는데 무엇 그리 힘들다고 가슴에 응어리를 품고 사는지. 평생을 가슴에 대못 박고 살아온 엄마 이야기에 마음이 천갈래 만갈래다. 엄마의 고생과 희생을 생각하니 내가 느끼는 어려움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 미련하기 그지없다. 자식 넷을 키우며 수없이 많은 시간 겪어 왔을 고통과 아픔을 생각하니 또다시 가슴이 져며온다.
비록 동네는 몰라보게 변했어도 그 시절 엄마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한 듯 하다.
살아온 억겁의 시간을 애써 쓸어보내기라도 하듯 밀려오는 파도를 넋을 놓고 보신다.
나의 숙제를 미리 알고 선수 친 엄마가 야속하다. 힘드냐고 위로라도 할 듯 하더니 살아온 설움에 뭍어 버렸다. 그럼에도 오래된 집이 사라졌듯이 엄마의 아픈 시간 모두가 사라지길 바라본다. 나의 가슴 속 응어리는 신이 알아아주시겠지. 상처 치료 중이란 팻말 하나를 걸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