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돌봄

언니를 따라 선택한 문에반

by 나린

'자기 돌봄'이라..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을 지칭하는 말을 돌봄 수업이라 한다. 수업을 마친 후 학원을 대신해 학교에서 외부 강사들을 통한 아이들을 돌보는 일. 부모를 대신해 아이를 돌보는 과정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갈까? 가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이들 내면의 힘, 또 다른 지혜로운 모습들을 찾아 주는 일들로 삶을 확장시켜 갈 수 있는 과정을 가르치겠지. 그러고 믿는 거지. 가르치는 대상이 누가 되었던 그들을 통해 정작 본인들 스스로가 더 많은 걸 공부를 하게 되고, 성장해 가는 걸 느끼는 일이 우선인 듯하다.


국민학교 시절 나의 돌봄의 시작은 언니를 따라 선택한 문예반이었다. 집에는 없는 책들이 있었고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일상을 담아 갈 일기로 나를 돌보는 방법을 배웠다. 그림일기 단계를 지나 오롯이 글로 한 바닥을 채워가야 하는 일기 쓰기가 처음에는 숙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날, 선생님께서 내 일기를 읽고 “네 마음이 담겨 있어”라고 말씀하신 순간 뭔가 달라졌다. 내 작은 생각과 느낌이 글 속에 고스란히 남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조금씩 그 시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일기를 쓰면서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됐다. 예를 들어 친구와 다툰 날에는 화가 나서 손이 덜덜 떨렸던 순간을 적었고, 엄마가 만들어 준 시래깃국을 먹으며 따뜻함을 느낀 날에는 그 냄새와 맛을 글로 옮겼다. 그렇게 적다 보니, 내 안의 감정들이 단순히 지나가는 게 아니라 내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소중한 이야기로 변해갔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어느 비 오는 날의 일기였다. 창밖으로 빗소리를 들으며 쓴 그 글에는 외로움과 평온함이 뒤섞여 있었다. 나중에 그걸 다시 읽었을 때, 그날의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생생히 떠올랐다. 그때 깨달았다. 글은 나를 돌보는 방법이었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때, 내가 나를 위로하고 이해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줬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보다는 나를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일기를 통해 나의 돌봄은 계속 이어졌다.

에고의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던 나에게 셀프의 나를 기록할 수 있었기에 일기장은 단순히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닌 나를 고스란히 담아둔 소중한 존재였다. 매일의 피로와 분주함 속에서 잠시 멈춰 나만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안식처이자 진짜 나를 만나는 거울과도 같다.

에고가 이끄는 세상에서 우리는 종종 타인의 기대와 시선에 맞춰 살아가느라 정작 내 안의 목소리를 잊어버릴 때가 있다. 일기장은 그 잃어버린 나를 되찾아주는 친구였다.

"자신에 대한 앎과 자기 돌봄이 삶의 든든한 초석이 된다. 자기 돌봄과 자기 이해의 여정을 담아 가야 한다. 나만 아는 삶은 황량하고, 나를 모른 채 타인만 챙기는 삶은 빈곤하다."

나를 돌보지 않고 타인을 통해 얻어지는 행복이란 없거나, 쉽지 않은 일이다. 모든 중심에 내가 존재해야 하며 어느 누구도 나의 삶에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트라우마. 내면아이의 모습 속에서 발견되는 슬픔은 대부분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함에서 오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 스스로도 타인의 관점에서 나를 평가하게 되는 일이 많다.

마치 그게 삶의 정답인 마냥.


감정은 내면에서 보내는 신호이다. 나를 관찰하는 느낌은 그리 나쁘지 않은 듯하지만 일상 속 상황에 따라 보내지는 감정의 신호들은 모두가 공감하는 범위가 다르다 보니 본인의 감정 변화가 우선일 것이다. 내 안에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들을 우선 내가 느끼는 나의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자기 돌봄'의 첫 발인 듯하다. 상황에 따라 일어나는 감정들을 느끼고, 인정하고, 이 또한 변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일이 단계를 밟아 자기 돌봄이란 생각을 해 본다.


아침에 마신 커피의 따뜻함, 창밖으로 스친 바람의 느낌, 혹은 아무도 모르는 마음속 작은 떨림까지. 셀프의 일상은 화려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빛이 났다. 그 순간들을 일기장에 적어 내려가며 나는 비로소 나 자신에게 귀 기울이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나라는 존재를 다시금 사랑하게 된다.


그리움은 아마도 그런 일기장이 곁에 없을 때 더 깊어질 것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문득 떠오르는 그 빈 페이지들, 채워지지 않은 이야기들, 손끝으로 종이를 넘기며 나를 기록했던 시간들이 그리워질 때 그 소중함은 더욱 선명해질 테지. 일기장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에고의 껍질을 벗고 셀프의 맨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존재이다. 그 존재들을 위한 첫 페이지를 열어본다.


어린 시절 문예반에서 시작된 그 작은 습관은 나를 돌보는 셀프 이야기의 소중함을 알게 해 줬고, 지금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드라마 속 대사처럼 나이가 들면 몸이 늙듯이 마음도 늙어 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