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영혼을 감싸는 바람의 노래
가을바람에게 보내는 편지
사람은 바람을 볼 수 없다. 만질 수도 없다. 다만 느낄 뿐이다. 얼굴을 스치고, 머리카락을 흩날리고, 마음을 흔드는 그 순간에야 우리는 바람이 있었다는 걸 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그게 바람이고, 어쩌면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다음 생엔 바람이 되고 싶다던 동생이 생각난다.
그때는 그 말의 뜻을 온전히 공감해주지 못했다. 그저 시적인 표현이라 생각하며, 나는 동생을 위해 시를 몇 편 써주었다. “어디서부터 온 바람인지, 어디로 가는 바람인지 모르지만, 쉼이 필요한 이들에게 잠시 머물다 가는 바람이 되고 싶다.”
그 문장을 적으며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따뜻해졌던 기억이 난다.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가 될 때가 있다. 길에서 마주친 미소, 우연히 건넨 인사 한마디, 혹은 지친 날 건네받은 커피 한 잔. 그 순간이 바람처럼 스쳐가도, 마음의 먼지를 털어주는 따스함이 남는다. 동생이 말한 ‘바람으로서의 삶’이란 어쩌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이 세상에 남기는 흔적이 보이지 않아도, 누군가의 하루에 부드럽게 스며드는 존재 말이다.
요즘처럼 가을바람이 기분 좋게 부는 날엔, 문득 그 동생의 말이 떠오른다. “언니, 가을바람은 겨울을 준비하는 배려의 바람이래.”
그 말이 참 마음에 남았다. 여름의 열기를 식혀주고, 다가올 추위를 대비하게 하는, 그 사이의 고요한 다리. 가을바람은 그렇게 배려 깊은 존재였다.
나도 그런 바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삶에 스쳐가지만, 그 순간 따뜻한 숨결로 남는 사람. 오래 머물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잠시라도 쉼이 되어주고,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라면 충분하다.
오늘도 창문을 살짝 열어둔다. 바람이 들어오면 내 몸을 훑고 지나간다. 그 안엔 계절의 냄새와 시간의 결이 함께 섞여 있다. 바람은 늘 나보다 먼저 계절을 알아채고, 그 계절의 소식을 전해준다.
“가을이야.”
그 한마디를 속삭이듯 전하고는 이내 사라진다.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 잡을 수 없어도 머물렀던 것들. 그것이 인생의 진짜 선물인지도 모른다.
동생이 되고 싶어 했던 그 바람,
이제는 내가 그 바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을 살짝 흔들어 놓고,
또 다른 이에게 부드럽게 스며드는 그런 바람.
오늘도 바람이 분다.
지렛대 세워 널어 둔 옷가지들을 말려주던 그리움의 향을 전해준다.
가을이다.
그리고 나는, 잠시 이 바람 속에서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