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새로운 계절을 여는 의식

by 나린


어릴 때 나는 사업하는 아빠를 따라 자주 이사를 다녔다. 대구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대구로. 도시의 공기와 방의 냄새가 바뀔 때마다 내 마음도 조금씩 흔들렸다. 친구를 사귀기도 전에 떠나는 일이 많았고, 그래서인지 한동안은 나는 친구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보니 그렇지도 않다.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내 인생의 어떤 시기마다 나를 반겨준 친구들이 있었다. 그건 잦은 이사가 남긴, 의외의 선물이었다.


결혼하고서도 나는 여전히 움직이는 삶을 살았다.

서너 차례 이사하면서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집을 새로 청소하고, 가구를 고르고, 커튼을 새롭게 다는 일은 작은 의식 같았다. 낯선 공간을 익숙한 공간으로 바꾸는 과정이 좋았다. 먼지를 닦아내며 새 시작을 정돈하고, 빈 방에 가구를 들이 놓으며 마음의 자리를 만들어갔다. 이사는 어린 시절과 달리 나의 선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빠의 루틴을 따라가고 있었다.


이삿날 비가 오면 잘 산다는 말이 있다. 어린 시절엔 비가 오면 짐 나르기가 불편해 싫었는데, 이제는 그 말의 뜻이 조금 이해된다. 비는 모든 먼지를 씻어내고, 남은 습기를 새로운 온기로 바꾼다. 어쩌면 이사는 그렇게 살아온 시간을 정리하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내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비 오는 이삿날, 젖은 길 위를 걸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사는 건, 어쩌면 계속 이사하는 일일 것 같다.’

장소를 옮기며 마음을 다듬고, 관계를 정리하며 새로운 인연을 맞이한다. 짧게 머물렀던 집들도 모두 내 삶의 한 조각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이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비가 오면 더 좋다.

내 지난 삶을 씻어내고, 새 삶의 향기를 머금은 비 속에서, 또 다른 계절의 문을 여는 기분이니까.


이사는.. 삶의 시나리오를 전환하는 과정이다. 새로운 이야기가 기대되는 설렘이다.

글을 쓰는 이 시간 비가 내리고 있다. 어린 시절 아빠 따라 이사 다니던 시간이 사무치게 그립다.

이사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