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에겐 형제들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따듯했고 또 시원했다. 누이들은 동생을 닭이 알을 품듯 아꼈고, 동생들은 누이를 어머니처럼 따랐다. 도깨비는 2남 2녀 중 장남이었다. 특히 남동생은 형의 그늘 아래 안락함을 좋아했다. 형은 딱지치기를 해 쌀 포대 가득 따온 전유물을 동생이 가지고 싶은 만큼 가질 수 있게 했다. 어디서나 동생을 살뜰히 챙기는 형 덕분에 아무도 소년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소년에게 아버지가 없는 서러움 따위는 없었다. 아버지의 빈 자리를 대신해 우듬지를 펼쳐 자신을 감싸주는 형이 더 믿음직했다.
집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늘 작은 것 하나도 형보다 우선은 없음을 보란 듯 형제들에게 보여줬다.
탁탁! “남은 계란은 형 것이야. 너는 다른 거 먹어!”
젓가락이 젓가락을 막는 기이한 풍경이 밥상 위에 펼쳐질 때가 많았다. 어머니는 뭐든 좋은 것은 형의 입에 하나라도 더 들어가길 바랐다. 어린 소년의 작은 가슴에 계란이 콕 박힐 때마다 강퍅한 엄마의 젓가락이 계란을 쏘옥 빼냈다. 형제들은 어머니의 그런 차별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 그들은 쉽게 감동하고, 잘 베풀며, 작은 것에도 감사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엄마의 편애에 가까운 사랑과 기대가 서운치 않았다. 가족을 사랑했고, 어머니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았기에 그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 같았다. 그저 모두의 바람과 같이 그 나무가 더 멀리 높게 뻗어나가기만을 바라고 고대했다.
어머니는 다른 형제들의 공부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것은 형이 가져야 할 행운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 줄 수 없다는 일종의 미신 같은 것이었다. 형 외에는 새로울 수 없는, 심심한 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형이 두고 간 책을 보는 것이었다. 소년은 독서광이었다. 형이 두고 간 책들은 하나같이 재밌었다. 가끔 어려운 책은 여러 번 읽었다. 그러면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오징어처럼 더 재밌었고, 볼수록 새로웠다. 그렇게 책을 손에 쥐면 마음은 하늘을 붕붕 날았다.
어머니는 몰랐다. 화려한 빛보다 선명한 빛이 세상에 더 잘 보인다는 것을. 소년은 화려하지 않지만 경계가 또렷하고 밝은 빛 같은 아이였다. 형이 읽고 꽂아둔 책과 문제들을 즐기듯 탐독하며 부쩍부쩍 커나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소년의 빛을 눈치채지 못했다. 소년은 형과 달랐다. 낮은 곳부터 차근차근 쌓아가는 방법을 잘 알았다. 운명처럼 주어진 불공평에 불평하지 않았다. 기대하는 이가 없어 잘하려고 하지 않았다. 늘 적당히 지냈으나, 사유의 깊이는 확장을 거듭했다. 그렇게 소년은 소리없이 선명하고 단단한 빛이 되어갔다.
형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집에 오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많이 바쁘겠지. 혼자 서울에서 공부하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겠어.” 형제들은 도깨비의 안부를 자기들끼리 물으며, 그를 기다렸다. 형은 그때 서울에서 머리만 큰 외계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무도 그의 변신을 알지 못했다. 그들의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형은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 비록 엄마가 원하는 학교는 아니었지만, 빨리 졸업하고 더 큰 세상에서 활개치는 아들의 모습이 보고 싶어 마지못해 입학금을 내주었다. 그 시절 경제는 스프링처럼 성장했기에 꼭 최고의 대학이 아니어도 성공을 꿈꾸기 편했다. 큰 아들이 다 갖지 못한 행운의 끝자락을 그냥 던져버릴 수 없어 남은 기회는 작은 아들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형이 가야 할 대학에 합격했다.
“어머니 전 그저 운이 좋았어요.”
어머니는 잠시 망설였다. 알 수 없는 불안이 그녀를 엄습했다. 그러나 그 불안은 그녀의 믿음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제 아무리 잘났어도 어디 형 뒤꿈치나 따라갈까, 그래 운이 너무 좋았다 너는 너무.” 그렇게 그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소년은 세상에 한발을 디딜 때마다 스케이트를 타고 미끄러지듯 멀리 나아갔다. 그의 질주는 멈출 줄 몰랐고, 결국 형보다 빨리 그리고 멀리 세상에 이름을 냈다.
동생의 질주에 가족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형은 차분히 그것이 당연한 것인듯 동생을 바라봐주었다. 그 눈빛엔 미안함, 좌절감, 안도감과 후련함이 섞여있었다. 붉은듯 검은듯한 보랏빛 안개가 동생과 형사이에 퍼졌다.
도깨비의 기행이 계속될 수록 가족들은 동생의 듬직한 어깨에 마음을 얹었다. 동생 역시 그것이 자신의 역할인듯 불만없이 집안의 문제를 해결했다. 그렇게 수년이 흘렀다. 도깨비는 이제 그들에게 영웅이 아닌 애물단지가 된지 오래였다. 그러나 동생은 늘 형을 사랑하고 아꼈다. 동생의 마음 속에 형은 늘 우듬지일 뿐이었다.
“형, 괜찮아.”
형은 계속되는 불운한 실패에 잠시 넘어졌을 뿐 다시 일어날 사람이었기에 그의 마음은 늘 괜찮았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의 방황이 아니었다. 형의 육체와 정신은 이미 난도질될 만큼 난도질 돼 있었다. 흩어져가는 형을 그냥 두고 볼수만은 없어 결국 병원에 갔다. 형은 조울증이라고 했다. 그러나 동생은 그 병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분명 입은 건조하게 ‘우리 형이 그럴리가 없어.‘라고 입으로 되내이면서 복받치는 소용돌이가 목을 타고 눈으로 터져나왔다. 비가 너무 내리는 날이었다. 그때 형은 우울증이었을까, 둘은 병원 앞 계단에 서서 엉엉 울었다.
“나 너무 슬퍼"
형의 목소리에서 동생은 들어본적 없을 40년 전 아이의 울음이 터져나왔다.
“형. 괜찮아.”
동생은 그말 말고 형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의 눈앞에는 딱지를 한가득 가져와 웃으며 놓아두던 듬직한 형이 아이가 되어 울고 있었다.
그들은 초록색과 보라색과 검은색이 뒤엉킨 습한 연기 속에서 어떤 색이 되어야할지 몰라 바닥으로 흘러갔다. 동생은 그날 자신이 이제 그가 되고, 그는 과거의 내가 됐음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