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한다는 것이 행복은 아니다

by 작은도깨비

어떤 일이든 잘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일찍부터 주목받는 사람들, 그들은 과연 행복할까?


잘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의 길을 걷게 된다.

첫번째는 잘한다는 평가가 자신의 자존감을 이루고 그것이 자신을 지켜 나가는 원동력이 되는 경우이다.

어릴 때는 공부, 운동, 악기 중 하나를 잘하면 잘한다 소리를 듣고 자란다. 그들은 잘한다는 말로 자신을 아끼게 되고, 자신이 가치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세상을 살다 보면 자신보다 잘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그 미묘한 상대성 속에서 작은 우위를 성취감으로 획득하며 자신을 유지한다. 그들은 그 미묘함으로 완벽주의자가 돼 있을 확률이 높다.

두번째는 처음에는 잘하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 잘하는 사람이 돼 있는 경우이다. 그들은 하고 싶은 것을 먼저 한다. 예를 들어 어릴 때는 재밌어서 한다. 그래서 재밌는 것들을 먼저 한다. 그러다가 해야할 과제가 주어지면 그냥 그것을 한다. 처음부터 뛰어나게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못해도 다른 이들의 시선이 신경쓰이지 않는다. 그러다 어쩌다가 잘하면 칭찬도 받고 재미도 있다.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되고 그렇게 잘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못하다 잘해본 경험이 쌓이면서 그것에 스스로 희열을 느낀다. 그렇게 자꾸 빠져들다 보면 어느 순간 어떤 분야에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그들은 위험을 뛰어넘는 기질을 갖게 되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사람이 된다.


문제는 늘 잘하는 전자와 같은 사람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좌절과 실패에 더 큰 절망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상대적 좌절은 상대적 기쁨과 비례하여 찾아온다. 넘어지고 일어서 본 경험이 적은 사람들은 넘어진 채로 주저 앉거나, 일어서도 다시 바로 제대로 서지 못하고 휘청댄다. 그중 일부는 행복과 거리가 먼 사람이 되곤한다.


굳이 어릴 때부터 잘하는 사람이 될 필요가 있을까,

현명한 부모는 잘하면 칭찬을 줄인다. 잘하면 그 자체로 기쁨만 느끼게 하고 기쁨에 공감해준다. 한동안 칭찬이 인간을 춤추게 한다고, 자식에 대한 칭찬을 부모의 의무와 역할처럼 여긴적이 있었다. 그 부작용으로 칭찬받지 못하면 존재를 잃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타인의 평가로 기쁨을 느끼기 보다, 자기와의 관계에서 만족으로 기쁨을 느끼는 그런 사람이 행복하고 잘할 수 있다. 그리고 상대적인 평가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성공과 실패에 진심으로 마음을 줄 수 있다. 자신과 다른 길을 가는 동행자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행복은 잘할 때보다, 못할 때 오히려 그것을 갖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지도 모른다. 자신 안에 넘어야 될 산을 즐기며 넘어지고 결국 넘는 사람이 정말 행복을 성취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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